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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 가볼만한 곳 : 송광사 (드론 영상)

리차드박(Richard Park) 2025. 6. 10. 21:18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 북쪽에 송광사가 있다. 송광사는 조계종이며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한국 삼보사찰이다.

신라 말엽에 혜린대사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정례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도, 참선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승보사찰이 되었다.

승보사찰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지눌, 혜심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하였다다. 외국 승려가 수도하는 국제선원도 있다.

2023년 5월 4일부터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신라 말 혜린대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신의 이름은 길상사로 작은 규모의 절이었다. 이후 고려 인종때 석조대사가 절을 확장하려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보조국사 지눌이 정례결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이다. 이때 고려 희종이 길상사를 수선사로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그 동안 정유재란, 한국 전쟁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고려 희종 이래로 수선사였던 사명이 언제 송광사로 개칭됐는지는 알 수 없고 송광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고 한다.

첫째, 18명의 승려가 나서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즉, 송은 18명의 승려를 뜻하고 광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둘째, 지눌이 정례걸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 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고 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불렀다고 한다.

셋째,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한다.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과 부도, 비석 등이 있다.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하는 국사전 등의 국보 4점을 비롯하여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 보물 13점, 천연기념물인 쌍향수 등 국가문화재 17점과 정례국사사리합 등 지방문화재 10점을 포함, 모두 27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어 장엄한 기상을 나타내며 전마다 피어오르는 향과 은은한 목탁 소리, 낭랑한 독경, 찬란한 고찰의 승맥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5월 4일 이전에는 입구에서 입장료를받았는데 큰 절 대부분은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고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송광사는 통일신라 말 혜린선사께서 창건하였고 고려시대때 보조국사께서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정례결사 도량으로 송광사를 택하신 뒤 총 16분의 국사스님을 배출하였고 조선시대로 들어와 부휴선수스님과 제자들이 머무르시면서 승보사찰의 전통을 이어왔다. 근래에는 효봉, 구산스님이 그 전통을 이어 한국정신 사상사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1969년 종합 수도도량인 총림이 된 송광사는 선원, 강원, 율원 등의 기관에서 스님이 상주하며 참선과 경전을 공부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행도량이다.

 

 

송광사에 들어가다보면 왼쪽에 불일암이 있다.

거리는 800m, 소요시간은 약 30분 정도 걸린다.

 

 

 

송광사 성보박물관은 1828년 이전부터 그 역사를 시작합니다.

조선후기 문인 연천 홍석주가 1828년 송광사를 방문하여 남긴 기록을 보면 대웅전에 봉안안 부처님의 치아, 사리, 목조삼존불감, 능견난사 등을 보고 깜짝 놀란 후 영원토록 보물로 전해져야 할 것들이라고 말한 대목이 나옵니다. 그 이전부터 송광사에서는 대웅전 한 편에 성보들을 모시고 보관, 전시했던 것입니다. 구체적인 박물관의 형태는 아직 갖추지 못했지만, 송광사성보박물관의 시원을 엿볼 수 있습니다.

1936년이 되면 송광사성보박물관은 전시시설인 진열소, 연구 시설인 연구실과 도서열람이 생기며 근대 박물관의 모습을 갖춥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사용하였고 전쟁 시에는 송광면 고대마을에서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은 숭보전이 있는 자리에 다른 잔각들보다 박물관을 제일 먼저 지어 1984년까지 성보를 보관했습니다.

얼마나 송광사의 스님들이 성보를 중요시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 대웅보전 맞은편에 성보각을 지어 2016년까지 사용하였으며 수장고 포화로 인해 2012년 신축박물관을 짓기 시작하여 2017년 개관하였습니다.

 

 

조계산에는 유서 깊은 문화재들이 곳곳에 있다. 대표적으로 조계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송광사는 목조삼존불감, 혜심고신제서, 화엄경변상도, 송광사국사전 등의 국보와 보물 21건이 있다. 이밖에도 송광사 주변에는 흑토기와 전도요지 외 시도지정문화재 8건, 16분의 국사 부도 가운데 7기, 천자암 곱향나무 쌍향수 등이 있다.

 

 

 

지장신앙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널리 신봉되었던 보살신앙 중 하나로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지장보살본원경], [점찰선악업보경] 등 경전을 근거로 하여 성립되었다.

지장보살은 윤회의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을 세웠으며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염라대왕의 몸이나 지옥나졸의 모습을 드러내 고통받는 지옥중생에게 설법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장보살의 본원력에 따라 조상들의 사후 구원을 위한 믿음으로 크게 발달했다.

송광사에는 지장신앙과 관련, 금명 보정스님이 쓴 '허주대사'전기에 대사가 지장기도를 올려 가피를 입고 자비와 복덕, 총명과 지혜를 얻어 널리 선풍을 드날렸다고 전한다.

현재, 송광사에 지장신앙 관련 유물로는 1796년 한글과 한문을 함께 판각한 [지장보살본원경]과 함께 [삼일암 지장시왕도], [천자암 지장시왕도]등이 있다.

 

 

쌍향수는 천연기념물 88호로 지정되어 있는 높이 12.5m 에 수령이 약 800년인 곱향나무이다.

보조국사께서 중국 금나라에 가서 왕비의 병을 고쳐주고 그 인연으로 왕자를 데리고 귀국할 때 짚고 온 지팡이를 천자암 뒤뜰에 꽂았는데 그것이 뿌리를 내려 두 그루의 향나무 거목으로 자라났다는 전설이 있다.

 

 

송광사를 중창한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심은 향나무로 척주당과 세월각 옆에 한 그루가 위치해 있다. 지금은 거의 말라버린 고목이지만 언젠가 푸른 잎을 피우며 희생하는 날 지눌스님도 이 세상에 다시금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적 설화가 깃들어 있다.

 

 

나무로 만든 거대한 목조용기로 [조계산송광사사고], [잡부]에 따르면 보성군 문덕면 봉갑사 인근 너문골에서 벌채한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 영조 이후 절에서 국재를 모실 때 손님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일종의 밥통이며 쌀 7가마에 해당하는 약 4,000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

 

 

송광사 3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는 느티나무로 만든 대형 용기다. 비사리구시는 송광사 인근의 보성군 문덕면 내동리 봉갑사 근처 마을에 있던 느티나무 고목으로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전하며, 그 용량은 2,600여리터에 달한다. [송광사지]에 따르면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밥을 짓는 곳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약사전은 송광사 경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법당으로 내부에는 중생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는 부처님인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형태로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영산전은 영취산에 거주하며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보물 1368호로 지정되어 있는 후불탱인 영산회상의 설법하는 장면을 모사한 영상대회탱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이 있다.

지금의 건물을 조선 인조 17년(1639)에 창건되었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으로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섰고 그 좌우로 시왕이 모셔져 있고 천도재와 49재, 영가천도 등 각종 재를 지내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겠다고 원을 세운 보살로 삭발한 모습이다. 

시왕은 인간이 살아있을 당시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분을 가리키며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사십구일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 1년, 2년때에 차례로 각 왕에게 가서 생전에 지은 선악업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을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 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차 중창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나부 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 송광사에 처음 오실 때 짚고 오신 지팡이를 꽂으시며 시를 남겼다.

너와 나는 같이 살고 죽으니

내가 떠날 때 너도 따나고 

너의 푸른 잎을 다시 보게 되면

나도 그런 줄 알리라.

그 뒤ㅡ 지팡이에서 잎이 자라다가 보조스님께서 입적하시니 이 향나무도 따라서 말라버리므로 고향수라 하였다. 고향수 이야기는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기록되어 있고 1886년 순천부사 이범진이 왕실에 보고하던 지도에도 불생불멸이라는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근세에 노산 이은상 선생은 이에 옲기를 "어디메 계시나요. 언제나 오시나요. 말세 창생을 뉘있어 건지리까?

기다려 애타는 마음, 임도 하마 아시리" 하니 이에 송광사 인암스님이 화답하기를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 나무 가지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합니다"하였다.

이처럼 많은 명사들이 기리는 속에 고향수는 보조스님께서 송광사에 환생하여 오시면 다시 푸른 잎을 피우게 되기를 꿈꾸면서 불가사의하게도 800여 년 동안을 이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송광사 삼청교는 일주문을 거쳐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는 계곡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삼청교는 능허교라고도 하는데, 네모난 돌 19개로 만든 무지개모양 [홍교]다리이다. 1707년(숙종33)에 다리를 만들고 1774년(영조 50)에 보수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화각은 삼청교 위에 있는 건물을 말한다. 우화각 위 지붕은 입구에서 보면 여덟 팔자와 비숫한 팔작지붕으로 보이고 출구 쪽에서 보면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처럼 보인다. 우화각 안에는 송광사를 찾았던 옛 문인들이 쓴 많은 시가 걸려 있다. 우화각에 걸린 '송광사 현판 글씨는 해강 김규진이 썼다.

 

 

하마비는 사람들에게 신성구역을 알리는 표시다. 조선 태종 13년(1413) 왕명으로 종묘와 궁궐 문 앞에 '대소인원개하마'라고 새긴 경계석을 세우고 이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게 하였는데 이것이 하마비의 연원이다. 송광사 하마비는 조선시대 왕실 기도처인 축성전(1886)을 건립하고 고종 24년(1887)에 세운 것이다. 

전국적으로 왕실 기도처 역할을 하는 사찰 입구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884m)을 중심으로 송광사, 선암사 등을 포함하여 면적 27.25 k㎡ 가 조계산도립공원으로 지정(1979.12.26)되었다.

조계산은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지정(1998.12.23) 되었고 백두대간에서 갈려나온 호남정맥 산줄기에 속한다.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 폭포 약수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워서 예로부터 소강남이라 불렀으며 전국 100대 명산으로 선정되었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유명하며 국보와 보물이 많아 문화재의 보고를 이룬다. 송광사의 개산 당신에는 송광산이라 하였는데 그 후 개창과 더불어 조계종의 중흥 도량으로 삼으면서 조계산으로 바뀐 것이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으로 조계산의 동쪽 사면 즉 순천만으로 흐르는 이사천의 상류계곡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백제 성왕 때의 아도화상이 개산한 고찰로서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참으로 값진 귀하고 값진 보배로 세가지를 들고 있다. 이를 삼보라고 한다. 그 세가지는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승가이다. 이는 불교를 받치는 세 기둥이요, 불교를 불교이게 하는 요소로 한국 불교에는 일찍부터 이 보배를 간직하는 삼대 사찰이 있고 이를 삼보사찰이라고 한다. 곧,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부처님의 가르침인 대장경이 봉안된 경남 합천 해인사, 그리고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는 송광사이다.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신평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