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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남 진도군 가볼만한 곳 : 박종식 생가. 태극기 마을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2.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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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옛길로 가다보면 길가에 태극기가 줄지어 개양되어 있다.

멈춰서 마을을 보니 마을에도 가가호호 평일인데도 태극기가 걸려 있다.

진도대교에서 진도읍내까지 지금은 4차선이 돼서 바로 가지만 

이 길이 있기 전에는 태극기 마을 송산리를 지나쳐야 한다.

 

마을 입구에  태극기 선양운동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태극기가 휘날리는 마을이 있다.

진도군 군내면 송산마을은 36가구 71명이 사는 작은 농촌마을이지만 안 길과 집 등에 모두 100개의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태극기가 주민 수보다 더 많다.

태극기는 마을 주민 박준범(59세)씨가 대(代)를 이어 관리하고 있다.

박씨의 아버지인 故 박종일씨는 지난 2009년 태극기 선양운동 마을추진위원회를 결성, 마을 입구에 3·1절과 민족대표 33인을 기려 각각 31개와 33개의 태극기를 처음 걸었다.

이후 10여년 동안 궂은 날이건 화창한 날이건 하루도 빼지 않고 마을 전체에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다.

100개에 달하는 태극기들은 비바람에 낡고 헤어져 석달 정도 지나면 제 모습을 잃어버려 1 년에 다섯 번 정도 새것으로 교체 작업을 한다.

그동안 박준범씨가 자비로 교체 비용을 부담해 오던 중 2017년부터 진도군에서 태극기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주민 박준범(진도군 군내면 송산마을)씨는 "흔히 볼 수 있는 태극기를 꼬박 꼬박 다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아버지에 이어 마을의 태극기를 10년째 관리하고 있다"며 "100주년의 의미 있는 삼일절을 맞아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대한민국 전역에 태극기 물결이 넘쳐 났으면 하는 바램이다"고 말했다.

한편 송산마을은 진도군을 대표하는 항일 독립지사인 故 박종식(1911∼1948) 선생의 고향이다.

그는 지난 1993년 건국 45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 투쟁의 공훈으로 건국 포장을 서훈 받았다.

현재 국가정보원 박지원 원장이 故, 박종식 선생의 세번째 아들이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으로 시작된 목포학생운동은 목포상업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목포상업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식은 광주 학생들과 연계해 목포 시내 각 학교에 진정서를 보내 동맹 휴교를 합의했다. 10개 항으로 된 유인물 1,500장과 태극기 120매를 제작하여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박종식은 1929년 11월 16일과 17일 양 일에 걸쳐 활동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목포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광주지방법원 형사부로 넘겨졌다. 1930년 3월 4일자『동아일보』에는 박종식이 출판법 위반, 시위 주동, 보안법 위반, 전신법 위반 등으로 재판을 받은 사실이 보도되었다. 당시 신문은 목포상업학교 학생 18명에 대한 공판 기록을 실었다. 목포상업학교 학생으로 박종식과 함께 거사에 함께 했던 진도 출신 학생으로는 진도읍의 이광우, 임회면 매정리의 이재실, 조도면 창유리의 박사배 등이었다. 재판 후 박종식은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감하여 진도에 돌아와서는 일제하에서의 공직을 거부하고 진도 군민들을 지키는데 앞장섰다. 해방 직전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일제가 군량미 조달을 위해 진도의 쌀을 거두어 벌포리 해변에 야적하고 선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종식은 진도군 고군면 유지 박종회와 상의해 우리 백성이 굶어 죽을 판인데 일본 놈들에게 빼앗길 수 없다면서 땅을 파고 숨기게 했다가 나중에 파내어 진도 군민들에게 돌아가게 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남북한 통일정부를 주장하였다. 박종식은 체격이 좋고 힘이 강해 씨름판에서 심판을 보는 일이 많았다 한다.

박종식선생의 집은 현재 사람이 살고 있어서 내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박종식은 1910년 12월 20일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에서 박원배(朴元培)와 곽동순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창녕조씨 조순덕과의 사이에서 박창원(재미실업가), 박경원, 박지원(전 청와대 대변인,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등 3남 1녀를 두었다. 1948년 향년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송산리 마을회관 바로 왼쪽이어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진도와서 새롭게 안 사실인데 박지원원장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었다.

 

 

주소 : 전남 진도군 군내면 군내면 송산길 9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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