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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남 여수시 가볼만한 곳 :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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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 실천한 손양원 목사의 순교 신앙을 계승하고 그가 남긴 순교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 1997년 4월 순교기념관을 개관했습니다. 순교기념관이 시옷(ㅅ)자 형태인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낸 것으로 손양원 목사의 성씨와 삼부자(손양원의 두아들)의 순교를 상징합니다. 건물벽이 12면인 것은 이스라엘 12지파와 예수님의 12제자를 상징하며 입구의 6계단은 안식에 들어가는 과정을 상징하고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36세 되던 1938년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8월 이곳 애양원에 부임하여 순교할 때까지 한센 환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이곳에 부임후 신사 참배 거부와 백성 선동 등의 죄목으로 1940년 일본 형사들에게 연행된 후 해방될 때까지 옥고를 치뤘습니다.

해방과 함께 애양원으로 돌아온 손양원 목사는 1946년 경남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48년 여순 반란 사건때 순천 사범학교와 순천 중학교에 다니던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반란이 진압된 후 두 아들을 죽인 원수와 같은 안재선을 양자로 삼아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후 손양원 목사는 1950년 9월 여수까지 내려온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여수 근교 미평 과수원에서 순교 하였으며, 이때 나이 48세 였습니다

 

 

삼부자가 순교한 일은 드문 일로 현재 이 묘역에는 1948년 10월 21일 순교한 손양원목사의 장남 동인과 차남 동신의 묘 2기가 앞에 있고 뒤에는 1950년 9월 28일 순교한 손양원목사와 1977년 11월 26일 사망한 정양순사모와의 합장 묘 1기가 있습니다. 손양원목사는 두 아들을 앞서 보내며 "내가 죽거든 이곳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건물들이 지어지는데 사용된 재정은 모두 한센병으로 이 곳에 와 있는 사람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져 더더욱 건물에 대한 의미가 있으며, 그들의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목사님을 통해 알고 믿게 된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기념관에 담겨져 있는 듯합니다.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에 갔더니 주차장을 지나면 손양원목사의 막내아들 손동길 목사님께서 앉아 계셨다.

그리고 처음이라고 했더니 먼저 삼부자묘를 먼저 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입구에서 오른쪽 언덕쪽에 있는 삼부자묘를 보러 갔다.

 

 

손양원목사님과 정양순사모는 한묘에 합장을 했고 아래 두 아들 손동인과 손동신의 묘가 있다.

방문했을때는 벌초가 잘 되어 있었다.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오른쪽에는 공원처럼 꾸며져 있고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방문객들이 올때마다 막내아들 손동길목사는 방문객들을 안내했다.

손동길 목사님은 50년생이며 현재는 퇴임한 상태이다.

손동길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는데 본인은 3시간 유복자라고 했다.

즉 어머니가 임신한 상태에서 손양원목사님께서 순교하신 것이다. 그리고 순교일에 태어났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의 본명까지 알려주었다.

본명은 손연준, 정쾌조 라고 말했다.

손동길 목사님은 15년동안 목회를 하셨고 여수에 오셔서 사신지는 11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에서 설명한지는 2024년 올해 9년째라고 말했다.

 

 

전시관은 1층과 지하1층으로 이루어졌다.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을 가려면 공항울타리를 돌아 빙 돌아가야 한다.

 

 

손동길 목사님은 순교기념관 자체가 기독교적이지 않고 천주교를 닮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안내와 설명된 글 중에도 오류가 많이 있다고 했다.

여수시에 정정을 요청했는데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산증인으로 무임금으로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앞에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원하면 설명도 해준다.

나는 사진과 촬영을 원해서 괞찬다고 했다.

그리고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앞에 있는 헌금함에 헌금을 하면 애양원교회에서 가져간다고 했다.

헌금이 손양원목사님의 가족에게는 한푼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손양원 목사님의 후손들은 어렵게 살고 있는 듯 하다.

진실은 역사를 통해 알려진다. 방문객에게 진실을 알려주고자 지금도 해설사로 자청한다.

 

 

손목사의 한센병이 걸린 사람의 발에 있는 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 소독해 주었던 일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손목사는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된 채 살아가는 삶 안에서 그들에게 교육을 하기 위해 그 사람들 안에서 법을 만들어 법을 지키며 살아갔으며, 선생님을 뽑아 교육을 시켰고, 병이 악화될수록 눈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스스로 눈을 뽑아 볼 수 없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 모조리 들으며 외워버렸습니다.

백범김구 선생님께서 손양원 목사님을 교장으로 청빙하였지만 한센병 환자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며 거절하셨던 손목사의 삶, 그리고 마지막까지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사셨던 삶은 들을수록 숙연해지게 합니다.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돌길 7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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