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전남 고흥군 가볼만한 곳 : 갑재민속전시관 (드론 영상)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3. 8. 9.
728x90
반응형

전라남도 고흥에 내려가다보면 제일 먼저 접하는 곳이 갑재민속전시관이다.

우주항공로 도로 바로 옆이다.

인터넷에 있는 주소와는 다르다. 꼭 기억하세요

 

2018년 6월 25일에 문을 연 갑재민속전시관은 근.현대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갑재민속전시관은 두원면 운대초등학교가 폐교된 곳을 리모델링하였으며 1만3천㎡ 부지에 5개의 전시실과 체험실, 관리동, 공원 등을 갖췄다.

 

갑재민속전시관은 유물 기증자인 이기재(호: 갑재)관장님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과거 교사생활을 하던 이기재관장님은 2017년 5월 근·현대 생활유물 3천600여점을 고흥군에 기증했다.

전국을 돌며 다양한 생활유물을 수집품으로 모은 것이다.

 

 

갑재민속전시관 야외에는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서 운동장 주변을 둘러봐도 좋다.

 

 

고흥의 민속

민속은 사람들 사이에 이어져 온 사회적 관습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집단 사이에 전해져오는 생활문화를 이야기한다. 생활문화는 지역민들이 주어진 자연환경 내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체계적으로 행해지던 일정한 삶의 패턴이며 시대별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지속적으로 변화하여 왔다.

고흥군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동시에 드넓은 평지와 산지를 가지고 있어 농업, 어업, 축산업 등 다양한 생업활동이 이루어져 왔다. 이로 인해 "의, 식, 주"가 크게 발달하였으며, 종교, 예술, 놀이 등이 다양하게 행해졌다.

민속전시실에서는 역동젹으로 행해졌던 고흥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절별 생업활동과 세시풍속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며 고흥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고흥의 세시풍속

세시하는 말에서 세는 한해를 시는 사계절을 뜻하며 계절별로 일정한 날에 행해지는 훙속을 이야기한다.

고흥의 세시풍속은 주로 음력 1월 1일과 정월대보름에 집중되어 있다. 

새해에는 자식을 둔 부모들이 한 해 신수가 나쁜 자녀들을 위해 개울가에서 모래를 퍼와 징검다리에 올려놓고 액막이를 하는 "노두"라는 풍속이 행해졌다. 연초부터 정월대보름까지는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의 하나인 "매구굿"이 진행되었다. 

정월대보름에는 횃불을 들고 마을 뒷산에서 달이 떠오르는 것을 맞이하여 연운을 기원하였다. 이 때 달빛이 밝으면 풍년, 어두우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고흥에서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등 다양한 세시풍속이 행해졌다.

 

고흥의 학교

고흥의 교육은 조선시대 향교와 서당으로부터 출발한다. 호남으로 유배된 유학자들은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거나 인근 유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지역에 영향을 미쳤고 많은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일제강점기에는 근대 교육기관인 공립보통학교가 관내 모든 면에 설립되었으나 여전히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해방이후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교육열이 높아졌고 수많은 학교가 설립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 초등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1970년대에 이르러 면마다 3~5개씩 될 정도로 급속히 늘어나 학생 수는 5만명에 이르렀다.

1980년대 이후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향하는 인구이동으로 점차 인구가 줄면서 현재는 많은 학교들이 폐교되거나 통폐합되었다.

 

삶을 살아가는 고흥사람들의 집

고흥군의 가옥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초가 지붕에서 슬라브지붕으로 변화하였다. 지붕개량은 가옥구조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으나 1990년대를 전후하여 불을 때는 아궁이가 연탄보일러나 기름보일러로 대체되면서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재래식 부엌이 입식 부엌으로 바뀌면서 조왕신을 모시던 전통적 풍속이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새로 건축한 집들은 대청마루 대신 거실을 만들고 화장실을 집안으로 들이면서 지역민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흥의 민간신앙

민간신앙은 마을사람 모두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올리는 제의이자 마을 축제였다. 

호남지역에서는 이러한 마을신앙을 대체로 [당산제]. [당제], [별신제] 등의 명칭으로 부르는데 고흥에서는 [당산제], [사당제], [당제], [신당제], [성황당제], [리사제], [도제], [사장제], [별신제] 등으로 마을마다 부르 명칭이 비교적 다양하다.

고흥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간신앙은 여러 세대에 걸쳐 형성되고 유지되어 왔으나 오늘날에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다라 축소되거나 심지어 소멸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고흥의 한가위

고흥의 추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는 모습은 다른 지역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추석이 오기 전, 조상의 묘소를 둘러보고 벌초를 하며 추석을 준비한다. 차례는 보통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의 집에서 지낸다. 차례를 지내는 시간은 집안마다 조금씩 다르다. 차례가 끝나면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성묘를 간다. 성묘를 마친 뒤에는 마을 어른들에게 마저 세배를 드린다.

모든 의례를 마친 뒤에는 마을 공터에서 강강술래, 씨름, 그네타기, 줄다리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으나 근래에는 이러한 전통 놀이에서 노래자랑대회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고흥의 겨울나기 

고흥의 겨울은 주로 겨울을 나기 위한 생업활동과 이듬해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구분된다.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하여 어업, 축산업 등 생업은 물론이고 의식주 생활 전반을 점검하고 준비하였다. 

추운 겨울에는 거주공간의 보온 효과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으며 적은 양의 불을 때더라도 방이 따뜻하기 위해서 뚫어진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바람이 새는 벽을 다시 튼튼히 보수하였다.

남성들은 주로 땔나무를 구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남는 시간에는 부서진 농기구를 수리하면서 이듬해 농사를 준비하였다. 

여성들은 주로 볏짚을 활용하여 새끼를 꼬거나 음식을 보관하는 가마니, 멍석, 돗자리 등을 짜면서 겨울을 보냈다.

 

고흥의 농업도구

우리나라의 농업은 신석기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고흥 고인돌에서 출토된 반달돌칼은 청동기시대부터 고흥지역에 농업이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잇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업발전을 위한 다양한 국가정책이 시행되면서 쌀의 자급이 가능해졌다. 특히, 이 시기는 쟁기, 쇠스랑, 써레, 두레, 가래 등 인력, 축력을 이용한 전통적인 농기구에서 경운기, 파종기 등 동력을 이용하는 현대화된 기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로 다양한 농기구가 혼재되어 사용되었다.

 

 

갑재민속전시관 이기재 관장님께서 일찍 도착한 나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보성군 벌교읍에서 고흥읍으로 가는 우주항공로 바로 옆에 있다.

 

두원면 운대초등학교가 폐교되고 리모델링해서 갑재민속전시관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래서 운동장도 넓어서 주차하기에도 좋다.

 

본 건물 왼쪽에는 전통민속체험관이 있다.

 

고흥에서 처음 만나는 갑재민속전시관은 고흥의 과거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먼저 방문하고 고흥을 여행하면 좋을 듯하다.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저의 유튜브를 방문하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두원운석길 9 (인터넷에 있는 주소는 틀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