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에 있는 오충사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구국을 위하여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과 압해정씨 창원파 일문의 충절공 정철, 충의공 정춘, 충숙공 정린, 충정공 정대수 등 충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우이다.
오충사는 여수시 선원동 가곡마을에 건립되었던 가곡서원으로부터 연원한다. 이 가곡서원은 임진왜란 중 큰 공을 세우고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정철의 공을 인정하여 조선 조정에서 충절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지자 1826년 4월경 성균관과 순천향교 유림들에 의해 사우 건립 여론이 형성되었고 그 해 7~8월에 전라도 향교(광주, 나주, 전주, 남원 향교)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건립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어 1847년 전라도 유림들의 상언에 의해 가곡서원이 건립되었으며 이후 사충사를 병설하여 정철, 정춘, 정린, 정대수 등 사충공신을 배향하였다.
그런데 사충사는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가곡서원과 같이 훼철되었다.
이 사우는 1923년 8월 압해정씨 창원파 문중과 유림, 향민들에 의해 현 위치에 이건하고 이충무공 후손들과 합의하여 충무공 이순신을 주벽으로 사충공신을 함께 해향하고 오충사 편액을 걸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였던 1938년 일본경찰에 의해 강제폐쇠되면서 사중재산까지 몰수당하였다가 1962년 현위치에 추모복설하였다. 1976년 한차례 중건되었으며 충의로 순국하여 나라를 지켯던 다섯 충신을 찬양하고 기리기 위하여 여수지역 유림들과 이충무공 유적 영구보존회가 향민들과 같이 매년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 석채례를 봉행하고 있다.
오충사는 충무공 이순신과 임진왜란때 전사한 창원정씨 집안의 충신 네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1847년 정재선이 그 선조인 정철에게 충절공 이란 시호가 내려진 것을 기려 가곡마을에 세운 사당으로 그때는 '가곡사'라 하였다가 위에 정씨 집안의 충신 정춘, 정린, 정대수 세분의 위패를 함께 모셔 '사충사'라 하였다.
1864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려 헐렸으나 1921년 이곳에 다시 세울때 충무공을 사당의 으뜸 위패인 주벽으로 모시고 '오충사'라 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1938년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62년 복원한 것이다.
앞면 3칸 단층 팔작지붕이며 신당. 강당. 재실 등의 부속 건물이 있다.
오충사 입구 왼쪽에 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은 골샘이라고 불렀다
1520년경에 발굴한 석정으로서 기묘명현 정계생이 조정에서 이조좌랑으로 재직할 때 중종반정으로 기묘사화가 일어나 신진사류 조광조 등이 사사되자 부당함을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자 벼슬을 버리고 웅천동 송현마을에 은거하면서 이곳 대인산 아래 별당을 지어 나라를 걱정하며 지내실때 손수 발굴한 우물로 최근까지 큰마을과 청룡마을 200여 호가 이용하였다.
웅천지구 택지개발시 압해정씨 창원파 여수 종중의 주선으로 보존하고 있다.
오충사에 들어서면 바닥이 모두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서 잡초가 자라지 않는다
오충사 전체적인 모습이다.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안쪽에 오충사가 있고 왼쪽에는 우물과 비석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과 임진왜란때 전사한 창원 정씨 집안의 충신 네분의 신위를 모신 사당 오충사는 잘 관리되고 있으며
오충사 앞은 공원으로 가꾸어져 있었다.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624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남 여수시 가볼만한 곳 : 용기공원 (드론 영상) (28) | 2024.11.23 |
---|---|
전남 여수시 가볼만한 곳 : 오포대 (드론 영상) (26) | 2024.11.20 |
전남 여수시 가볼만한 곳 : 오동도 (드론 영상) (39) | 2024.11.14 |
전남 여수시 가볼만한 곳 : 예울마루 (드론 영상) (25) | 2024.11.11 |
전남 여수시 가볼만한 곳 : 영당지 (드론 영상) (15) | 2024.1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