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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북 고창군 가볼만한 곳 : 황윤석 생가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1.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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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5호.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의 생가로 이재(頤齋)의 선친이 건립하였으며 지금은 안채·사랑채·곳간채·문간채만 남아 있다.
높이 80cm의 잡석기단 위에 세워진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초가집으로서 그 규모가 매우 큰 건물이다. 서쪽부터 간살의 구성을 보면 부엌·안방·대청·건넌방 순으로 방이 이어져 규모는 크지만 전형적인 남부지방의 평면구성을 따르고 있다. 다만 안방과 부엌 사이에 있는 반칸 크기의 작은 쪽방이 특이하다. 이집에서는 재방이라고 하나 정지방의 준말인 듯하다. 이 방에는 안방과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있으며 마루에서도 직접 출입할 수 있다. 대개 마루에서 부엌으로 쪽문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나 이 집은 이 방을 통하여 부엌과 안방이 연결된다. 또한 2칸의 대청 북쪽 툇칸에 짜놓은 붙박이 뒤주도 이 집의 큰 특징이다.
뒤주 상부 뒷벽에는 벽감을 만들어서 신위를 봉안하고 있다. 당초에는 사당이 안채 뒷편에 별도로 있었다고 한다. 벽체는 문을 제외하고 모두 판벽으로 마감하였으며 밑에는 머름청판으로 격식을 갖추었다. 전면의 두리기둥 및 부재의 넉넉함과 치목수법을 볼 때에도 충분히 기와집으로 지을 수 있었지만 기와를 덮으면 혈(穴)이 눌려서 집안이 좋지 않다는 믿음 때문에 초가로 한 것이다.
사랑채와 문간채, 곳간채는 소실되었던 것을 1909년에 다시 지었다. 곳간채는 5칸 규모로서 매우 큰 편이며 바닥에는 모두 마루를 깔아 알곡을 그대로 갈무리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가옥 내에는 『이재난고(頤齋亂藁)』 등 문집 50책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인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의 생가이다. 황윤석은 1759년(영조 35)에 과거에 합격하고 추천으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이재난고(頤齋亂藁)』 등 3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황윤석은 당시 학자가 탐구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한 학자였고, 유학자이기도 했다. 또한 상수학자, 역사학자, 어학자이며, 사회 경제학자이고, 과학자이기도 하였다. 1986년 9월 8일에 고창군 민속자료 제25호로 지정되었다.

 

황윤석 생가는 황윤석의 선친인 황전이 건립하였으며 지금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가 남아 있다. 안채는 높은 축대 위에 세웠는데, 정면 6칸이고, 앞뒤에 퇴간을 둔 5량가의 일자형 초가로 전형적인 남부 지방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벽체는 안방에서 중방 사이를 모두 판벽(板璧)으로 하였고, 중방에서 하방 사이는 솟을동자를 세운 머름청판으로 꾸미는 등 격식을 갖추었다. 정면에서 볼 때 동쪽 맨 끝 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방 한 칸, 대청 두 칸, 부엌 한 칸의 순서이다. 대청 북쪽 벽 위에 평해왕씨 선조의 위패를 둔 곳이 있다. 원래 안채 뒤편에 사당(祠堂)이 있었으나 터만 남아 있고, 사랑채, 문간채는 소실되었던 것을 1909년에 다시 지었다.

 

황윤석은 학문적 관심 분야와 저술 분량으로 볼 때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거장 디드로에 견줄 만하며 21세기에 도래할 지식 정보화 사회를 예견한 선각자이다. 황윤석 생가는 전형적인 남부 지방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재난고』는 이재라는 인물이 10세부터 시작하여 63세 일기로 죽기 전까지 보고, 듣고, 배우고, 생각한 문학·산학·예학·도학·지리·역상·언어학·예술 등 정치·경제·사회·농·공·상 등의 여러 방면에 걸친 인류생활에 이용되는 실사를 총망라하여 일기 또는 기사체로 쓴 것으로, 6천장 57책으로 되어 있다

 

 

뒷뜰에는 큰 나무가 있어 듬직하다

 

뒷뜰에 있는 장독대들..

현재 사람은 살지 않는다. 문화재로 고창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부엌은 아니고 방에 불도 지키고 물도 데우는 아궁이

 

마을 입구에 있는 안내석

 

호남의 3대 실학자 중 한 사람인 이재()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이 태어난 곳이다

전라북도 고창의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

전라북도 순창의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1712~1781)

전라남도 장흥의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이 3명이 호남의 3대 실학자라 말한다.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길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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