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하멜전시관은 전라남도 여수시에 위치한 전시관이다.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하멜은 13년동안 조선에 머물러 1653~1666까지의 경험을 기록했으며 1659년부터 7년간 여수에 억류되었다가 1666년 9월 4일 일본으로 탈출했다.
하멜 전시관 정문 앞에는 하멜동상이 있다.
[하멜표류기]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 하멜 일행의 제주도 표착부터 여수에서의 3년 6개월 간의 삶과 흔적을 모아 그들이 떠난 역사적인 장소에 하멜전시관을 건립하여 여수시와 네덜란드의 우호의 장이자 17세기 우리나라와 세계를 이해하고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열어가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하멜 전시관 입구 오른쪽에는 하멜등대를 만들어서 놨고 여수 여행을 하면서 찍는 스템프가 있다.
하멜 전시관은 모두 2층으로 되어 있다.
하멜은 조선에서 13년 28일동안 있었으며 여수에서는 7년간 지냈다.
네덜란드의 부흥과 함께 태어난 헨드릭 하멜은 동인도연합 회사에 소속되어 출발한다
네덜란드 텍셀항에서 바타비아(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한다.
17세기 바타비아는 동인도연합회사의 중간 기착점이자 본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651년 7월 4일 바타비아에서 출항해 7월 10일 도착지인 포르모사(현. 타이완)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1653년 7월 30일 총독과 위원회의 명령으로 포르모사에서 다시 나가사키 데지마를 향해 출항한다.
하멜 일행은 저녁 무렵 포르모사 인근에서 폭풍우를 만나 중국 해변으로 피신, 8월 2일 다시 항해를 시작했으나 거센 풍랑 속에 북동쪽으로 항해를 계속하다가 8월 10일 마침내 파손되어 켈파르트(현.제주도)로 표류해 오게 된다.
하멜 일행이 타고 왔던 배를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1648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네덜란드는 우수한 항해력을 바탕으로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먼저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춘 동인도연합회사를 설립하여 동아시아 진출을 꾀하였다. 나라 간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들인 네덜란드는 아시아 무역권을 선점하게 되어 17세기 중반에는 영궁을 뛰어 넘는 최대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한 시점도 바로 이 시기와 맞닿아 있다.
네덜란드는 동아시아 무역 진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연합회사를 설립했다. 외국과의 조약체결 및 군대편성의 권한도 가지고 있었던 동인도 연합회사는 바타비아에서 무역상관의 거점을 두고 희방봉에서 타이완까지 광범위한 지역의 무역권을 선점하였다. 일본과의 1600년 네덜란드선이 표착을 시작으로 히라토와 나가사키(무역항)으로 삼아 통상을 유지하였다.
네덜란드와의 관계 수립은 하멜 일행의 조선 표착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1627년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조선이름 : 박연)가 풍랑으로 동료 2명과 함께 조선에 표착해 온것이다. 이후 1907년 이준 열사가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에 항거해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순국한 일은 우리의 아픈 역사로 남아 있다.
1961년 4월 4일 우리나라는 네덜란드와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1969년 네덜란드에 한국대사관을 설치해 지금까지 수교를 이어오고 있다.
1653년 8월 16일 64명의 선원을 태우고 네덜란드를 떠나 일본의 나가사키를 향해 항해하던 하멜 일행은 거센 풍랑을 만나 켈파르트 섬(제주도)로 표류해 오게 된다.
64명중 36명만이 살아남아 제주 관아에 머물게 괸 하멜 일행은 처음 제주 목사 이원진의 따뜻한 배려로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간다. 거러던 중 하멜 일행처럼 조선에 표착했다가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이 임금의 명을 받아 일행을 찾아온다
박연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하멜 일행은 조선이 귀향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크게 실망한다.
일행은 식량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 새로운 지방관의 냉대를 견디지 못해 탈출을 시도하고 결국 붙잡혀 맞는다.
임금의 명으로 서울로 송환된 하멜 일행은 황의 호위부대로 선발되어 훈련도감에서 병영생활을 시작한다.
중국 통역사들과 함께 생활 하던 일행은 청나라 사신이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귀향의 도움을 청할 기회를 엿보던 일행은 사신 행렬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처지를 알렸으나 붙잡혀 그중 2명을 혹사하게 된다.
전라도 강진의 병영에서 생활하게 된 하멜 일행은 부임하는 사령관에 따라 생활을 달리하게 된다. 때로는 여행할 자유를 얻기도 하고 때로는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극심한 가뭄과 질병으로 함께 행활하는 것이 어려워져 순천과 남원, 여수로 분산되는 시련을 겪는다.
1663년부터 3년간 여수의 전라좌수영(현. 진남관 일대)에서 생활하게 된 하멜과 11명의 일행은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외출을 허락받은 등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곧 새로운 좌수사가 부임하면서 더위와 추위 속에 고관 노역을 하는 시련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후임 좌수사는 선량한 사람으로 하멜 일행을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여 위로하는 등 친절을 베풀어 하멜 일행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새로 부임한 이도빈 수사는 하멜 일행의 노역도 풀어주고 딱한 사정을 들어주었다. 때로는 해가 있는데 왜 도망가지 않느냐며 조선을 떠날 것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이도빈의 말에 용기를 얻은 일행은 배를 구하고 식량도 마련하는 등 떠날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어렵게 배를 구한 하멜 일행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1666년 9월 4일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꾸며 필요한 물품들을 배에 옮겨 싣는다. 하멜 일행은 달이 진 후 썰물 전에 여수를 떠나 10일 후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다.
바타비아를 거쳐 1668년 일행 7명은 본국으로 들어가고 조선에 남아있던 스페르베르호 선원 7명은 1668년 나가사키로 송환되어 하멜과 함께 1969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고국의 당을 밟는다
하멜은 동인도연합회사에 임금 지급을 요청하기 위하여 조선에서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유럽에 코레라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멜은 자신의 경험을 상세하게 기록한 하멜보고서를 통해 자신이 눈으로 본 조선의 이모저모를 유럽인에게 알리는데 이는 서양인의 눈으로 본 17세기 조선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통구민 배는 우리나라 전통 선박의 한 종류로 1666년 헨드릭 하멜과 그의 일행이 나가사키로 항해시 이용하였던 배이다.
통구민 배를 실제 크기의 70% 축소모형으로 제작하였다.
하멜 일행은 이 통구민 배를 구해 조선을 탈출했으리라 ~~
하멜 일행 12명이 귀향하기 전까지 3년간 문지기 생활을 했던 진남관은 이수닌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영이자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진남관'은 남쪽(왜군)을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 는 뜻으로 지어진 지방관어 건물로 여수 10경 중 하나에 속한다. 그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이도빈 수사는 하멜 일행이 귀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전라좌수영으로 배속된 하멜 일행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격려해 주었기 때문에 하멜도 자신의 기록에서 이를 자세하게 다루었다.
수사 이도빈의 무휼선정비가 있다
여수 진남관 전라좌수영비군이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이다.
조선 후기의 무신인 이도빈이 전라좌수살르 지낼때 빈민을 구제하고 선정을 베풀었던 일을 기려 1683년 (숙종9)에 세웠다
하멜전시관에 세워진 하멜 동상은 하멜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큼시가 2007년에 직접 제작하여 기증한 것으로 호르콤 시에 있는 것과 동일한 규모의 무게 140kg, 높이 1.2m 로 제작되었다.
하멜 전시관은 여수시 거북선대교 밑에서 가가우며 하멜등대로 가는 곳 왼쪽에 있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도 보이네요
낭만의 여수항을 여행하보세요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하멜로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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