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네팔 자유여행 : 셰르파 바끌레마을 (बाकले)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5. 3. 8.
728x90
반응형

네팔 카트만두에서 1주일을 지내고 3주일은 셰르파 바끌레마을(बाकले)에서 보냈다

1. 2월 카트만두 날씨는 한낮이 18~20도인데  바끌레마을은 더 쌀쌀하다.

워낙 고지대라보니 구름(안개)가 자주 끼였고 안개가 낄때면 더 추웠다.

눈은 1년에 1.2번 내린다고 했는데 내가 있을때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내가 잠잤던 집인데 집들이 띄염띄염 있다.

자신의 밭들이 있는 곳에 집을 지었다.

과거에는 대나무로 만든 집을 지었는데 요즘은 양철 지붕이 대부분이다.

 

 

안집과 부엌은 따로 있는데 이곳 부엌에서 요리를 해서 밥을 먹고 잠은 안집에서 잔다.

네팔 사람들은 모두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다.

왼손잡이는 왼손으로도 밥을 먹었다.

 

 

왼쪽 멀리 보이는 산너머는 티벳자치지구 중국땅이라고 했다.

그리고 산정상부분에는 만년설이 보였다.

 

 

셰르파족들의 부엌은 단촐하다.

달밧을 멋는 그릇과 차를 마시는 찻잔들.창(막걸리종류)을 마시는 잔과 뚱바(셰르파전통술)를 먹는 그릇들이 보인다.

 

 

손님이 왔다고 키우던 염소를 잡아주었다.

두명의 아들은 머리와 다리를 잡고 아버지는 단번에 목을 잘랐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서 털을 뽑았다. 

 

 

털을 뽑고 손질한 염소는 빨간 것을 발랐는데 베사르(बेसार)라고 했다.

베사르를 바른 염소 피부는 햐얀 것보다 더 먹음직했다.

돼지를 잡을때도 이 베사르를 발랐다. 베사르는 생강나무 종류이다.

 

 

야외 부엌인데 이곳에서는 럭시(증류주, 술)을 만들거나 물을 데울때 사용했다.

 

 

바끌레마을은 작년에 산길을 만들고 전기가 들어왔다고 했다.

그 전에는 차도 못들어오고 거디버자르 라이마을에서 오직 걸어서 와야 했다고 한다. 

거디 버자르에서 걸어서 5시간이 걸린다.

물론 이 길은 평소에 차가 없어서 지금도 걸어다닌다. 칸드바리에서 택시를 탈때 외에는 걸어다닌다.

산골마을의 연료는 나무 장작뿐이다. 그래서 장작을 패야 밥을 먹는다.

 

 

 

구름이 머무는 바끌레 마을은 자주 안개가 끼고 산을 타고 올라왔다.

안개가 끼는날이면 날씨가 쌀쌀하다.

바람이 안불고 해가 뜨는 날은 포근했다.

집 뒷쪽에는 넓은 공터가 있어서 늦은 오후에는 배구를 하러 모였다.

 

 

집 왼쪽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바위위에 장작을 올려놓았다.

 

 

도꼬(डोको)라는 대바구니인데 물건을 싣고 이마에 대고 짐을 나른다.

장작을 나를때, 곡식을 나를때 사용했다.

 

 

양지바른 따뜻한 곳에 멍구가 잠을 잤다.

 

 

도꼬에 장작을 담고 이마에 대고 짐을 나르는데 40kg정도 되었다.

체험 삼아 나도 장작을 져 봤는데 10m 도 못가고 내려놨다.

머리도 아프고 목고 아프고......

 

 

디도(ढिँडो)인데 꼬도(कोदो)를 분말로 만들어서 그릇에 물을 붓고 저으면서 익혀 먹는다

약간 걸죽하게 해서 손으로 먹었다.

나도 먹어봤는데 맛이 없고 심심했다. 영양가가 있다고 가끔 해 먹었다.

한국의 수수와 비슷한 곡물이다.

 

 

계곡을 따라 구름이 올라오는데 위에서 보면 안개이다.

 

 

이스꾸스(सकुल करेला)라는 덩굴열매인데  쩌서 사람도 먹고 돼지도 먹었다.

표면에 가시가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껍질을 벗기고 먹는다.

나도 먹어봤는데 아무 맛이 없고 심심했다. 그래서 한번만 먹어보고 안 먹었다. ㅎㅎ

 

 

염소를 잡은 고기는 작고 길게 잘라서 아궁이 위에 걸어 말린다.

아궁이를 불을때면 열기와 연기로 말린다. 그리고 저장한다.

전기가 들어왔다고 해도 하루에 한두번씩 끊어져서 냉장고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건조해서 보관했다.

고양이는 아궁이 옆이 따뜻해서 밤에 잠잘때도 아궁이 옆에서 잠잤다.

이 네모난 아궁이는 수다리에꼬 쭐로(सुदारिएको चुलो) 라고 하는데 마을 몇집을 다녔는데 모두 이 아궁이를 사용했다.

화구는 하나밖에 없어서 밥을 먼저 하고 밧요리는 나중에 했다.

 

 

이것은 닭장이다. 낮에도 대나무로 만든 우리에 넣고 밤에도 이 닭장에 넣었다.

왜냐하면 여우와 매들이 다니면서 물어간다고 했다.

한번은 멍구가 짓길래 밖을 봤더니 정말 여우가 닭을 잡으려고 하는 것을 봤다.

사람이 나오니까 여우는 혼쭐나게 도망갔다.

 

 

네팔 배추 사그(साग)이다. 달밧요리를 할때 이 사그를 잘게 썰어서 요리한다.

사그잎이 커서 몇장만 뜯어도 한끼를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야채가 심어진 곳은 대나무로 울타리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소와 염소들이 야채를 못먹게 하기위해서이다.

 

 

이것은 나무에서 달리는 토마토 룩 더마덜(रुख टमाटर)이다. 처음 봤다.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갈아서 페이스트를 만든 다음 밥과 같이 먹었다.

맛은 일반 토마토보다 시었다.

 

 

네팔 고추 쿠르사니(खुरसानी)는 길이가 짧고 매웠다.

나는 매운 음식을 안좋아해서 자제했다.

한번은 모르고 먹고는 혼쭐이 났다.

 

 

마을마다 이런 돌무덤이 있는데 작은 사원과도 같다

돌에 티베트어가 새겨져 있고 깃발이 꽃아 있었다.

한국에 마을 입구에 장승이 있던것과 비슷하다.

셰르파족들은 과거 500여년전에 티베트에서 이주해온 민족들이어서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수확을 마친 밭에서는 마른 곡식을 모아서 소각한다.

밭두렁도 태우기도 했다.

이곳은  워낙 고지대여서 논농사는 없고 대부분 밭농사를 한다.

거디 버자르 라이족 마을 밑에는 논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우리 같으면 어깨에 매고 있을텐데 네팔에서는 거의 모든 짐은 이마에 지고 다닌다.

 

 

이 산동네에서는 장작이 기본이다.

1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팬다. 그리고 마르면 도꼬라는 대바구니에 담아서 가져온다.

물론 산도 다 주인이 있어서 아무데서나 장작을 패지 못한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젊은이들은 유일한 운동인 배구를 즐겼다.

거의 매일 집 뒷뜰에 모여서 배구를 했다.

 

 

멀리 보이는 산정상에 하얀 것이 보이는데 만년설이다.

 

 

바끌레 마을은 양지 바른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뒷산인 구라세 다다산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어서 겨울에 비교적 따뜻하게 보낼수 있었다.

나는 나중에 이 산을 2시간 걸려서 올랐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넘어는 티베트자치지구 중국땅이다.

3일을 걸어가면 국경이 나온다고 한다.

 

 

요리 도구들은 모두 둥근 볼이다. 화덕, 수다리에꼬 쭐로에 올리고 장작을 넣어 불을 지핀다.

연기때문에 부엌이 까맣게 그을렸다.

 

 

옥수수를 알알이 털고 있다.

이 옥수수는 가루로 만들어서 돼지를 잡을때 순대속에 넣을것이라고 했다.

 

 

몇일 있으면 둘째 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대나무발(찌뜨라 चितरा)를 만들어서 울타리를 만들었다.

 

 

이 빨간꽃은 네팔의 국화인 구라스(गुराँस)이다. 냄새를 맡았는데 향기는 없었다.

한송이에 9개 정도의작은 꽃이 달려 있었다

 

 

남쪽으로는 바끌레 초등학교가 보인다. 분교 수준이다. 학생은 모두 16명 이다.

밭에 노란꽃이 피었는데 아직 여물지 않은 유채꽃이다.

유채꽃을 수확한 곳도 있고 아직 꽃이 지지 않은 곳도 있었다.

 

 

대패를 빌려서 판자를 다듬고 있다.

 

 

칼은 숯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작은 돌에다 갈았다.

이곳에는 저런 칼은 허리에 차고 다닌다.

처음에는 흉기를 차고 다녀서 무서웠는데 다용도로 사용한다.

 

 

돼지를 집았는데 역시 잘게 소분해서 대나무를 얇게 썰은 것으로 꿰메서 묶고 걸어 놨다.

3일  뒤에 있을 둘째 아들의 결혼식에 사용할 것이다.

 

 

돼지 내장에 옥수수볶음 가루, 돼지피, 꼬도 양념을 넣어 만든 네팔 순대 안드라(आनदरा) 이다.

먹어봤는데 약간 퍽퍽한 느낌이고 돼지 내장이 질기다. 한국의 순대가 더 맛있는듯 하다.

 

 

옥수수를 수확한후 집안 2층에 이렇게 걸어서 보관했다.

나는 팝콘을 해달라고 해서 자주 먹었다.

 

 

집안 3층 위에는 꼬도(कोदो)를 저장하고 있었다.

이 꼬도는 창, 뚱바, 럭시를 만드는 재료이다. 모두 술 종류인데 1년내내 먹어야 하니까 밭에는 꼬도를 많이 심는다.

 

 

집안 1층 구석에 있는 술단지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다.

1층에는 창고, 2층에는 침실과 창고, 3층에는 꼬도를 저장했다.

 

 

네팔여행에서 자주 보는 것인데 멀리서 봤을때는 잘 몰랐는데 가축의 먹이로 줄려고 이렇게 저장했다.

보이는 것은 옥수수대이고 볏짚도 이렇게 보관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집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부엌이다.

 

 

식수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호스를 연결해서 사용했다.

밑에 사는 집에서 사용하면 윗집은 자연히 물이 안나왔다. 수압때문이다.

 

 

구라세 다다산 동남쪽에 위치한 셰르파족의 바끌레 마을이다.

 

 

바끌레 마을 초등학교이다.

 

 

산을 개간해서 만든 계단식밭들이 보인다.

 

 

1층 안쪽에는 티베트 불교를 믿는 셰르파 사람들을 볼 수 있있다.

둘째 아들 결혼식에도 티베트 스님이 와서 진행했다.

 

 

짚으로 만든 똬리인데 방석으로 사용했다.

 

아저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멧돌인데 2개나 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었다.

돌의 눈에 따라 옥수수를 가는 멧돌, 꼬도를 가는 멧돌이 달랐다.

 

 

계란을 보관하는 것이 신기했다.

모래에 세워서 보관했다.

 

 

네팔 사람들이 사용하는 칼이다.

이 칼은 다용도이다. 즉, 산에서 나무를 할때, 대나무를 벨때, 가축을 잡을때, 요리할때. 필요하면 다 사용한다.

칼집이 있어서 넣고 허리에 차고 다닌다.

도시에서는 못보는데 시골에서는 자주 보인다.

 

 

아저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토종 벌통이다.

한국에 있는 벌꿀보다 약간 작았다.

그리고 벌꿀도 먹어봤는데 한국처럼 걸죽하지 않고 더 수분이 없는, 된 상태였다.

설탕은 먹이로 전혀 주지 않는 토종꿀이었다.

다른 집에도 봤는데 이런 벌통이 있는 것을 몇몇집에서 발견했다.

 

 

울타리가 처진 곳에는 양 3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돼지는 둘째 아들때 잡았는데 2년을 키워서 150kg 이 넘었다.

피하지방이 많은 비계가 많이 나왔다.

 

 

사람은 안먹고 돼지나 가축이 먹는 호박 커르부자(खरबुजा)이다.

모양이 꼭 수박같지만 속은 영락없이 호박이다. 돼지도 먹고 소도 먹었다.

돼지는 생으로도 먹고 삶아서도 먹었다.

 

 

바로 옆에 살다가 20년전에 이 집을 짓고 옮겼는데 1층에 있는 화덕이다.

 

 

부엌 천정에는 대나무로 만든 새끼가 말아 있었다.

한국에서는 볏짚으로 만들고 제주도에서는 촐로 만드는데 이곳에서는 대나무로 만들었다.

 

 

빨래는 넓은 바위에 그냥 널었다.

빨래줄도 없도 주변이 모두 빨래를 널수 있는 바위들이 많았다.

다른 집은 그냥 나무위에 널기도 했다.

 

 

네팔에서는 기본적으로 오른손으로 달밧을 먹는다.

달밧은 접시에 밥, 밧, 고기나 야채요리를 놓고 손으로 적절히 주물러서 섞어 먹는다.

나는 한번도 손으로 먹지 않았다. 숟가락을 준비해주어서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먹엇다.

 

 

셰르파 마을에 유일한 구릉족 아줌마가 살고 있었는데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쾌활했다.

한번은 구릉 아줌마가 술에 취해서 이 집 부엌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가기도 했다. 헐 .. 외박을 한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구릉 아줌마 남편이 와이프를 찾으러 다녔다. 우리는 그 후로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칸드바리에서도 다른 구릉 아줌마를 봤는데 코에 코걸이를 하고 다녔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다.

신발은 1층에 벗어 놓고 맨발로 올라가야 한다.

나는 발이 시려서 잠잘때도 양말을 신고 잠을 잤다.

2월인데 새벽에는 영상 5도, 낮에는 18도 정도 되었다. 카트만두 시내는 밤에는 7도 낮에는 20도 였다.

한국과는 거의 10도 이상 따뜻했다.

한국과의 시차는 3시간 15분 정도 늦었다.

 

네팔 산골 구름이 머무는 바끌레 마을은 인터넷이 잘 안되었다. 그래서 3주동안은 석기시대로 돌아간듯 했다.

더군다나 이곳에는 임도가 작년에 국가에서 만들었다고 하니.. 

전기도 작년에 들어왔다고 했다.

건너편 산에도 듬성듬성 있는 집들이 산속에 있었다.

밤에 소변이 마려서 밖에 나오면 밤하늘의 별빛이 선명했다.

하늘이 닿을듯한 네팔의 산골마을 사람들은 자연에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특히 셰르파 사람들은 이름에서 보듯이 약 500여년전에 티베트에서 넘어온(동쪽에서 온) 사람들이고 고지대에 잘 적응이 되어 있었다.

다만 아플때가 문제였다.

한국에 올때 내가 타고 가는 택시에 임산부가 아기를 낳다가 몸이 안좋아서 차에 타는데 걷지를 못해서 들것에 실려서 택시에 같이 탔다. 그리고 칸드바리에서도 들것에 실려서 병원에 들어갔다. 5시간 걸려서 병원에 갔다.

만약 내가 부른 택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젊은 부부는 칸드바리에도 처음 간다고 했다. 그래서 택시 기사가 병원 입원수속을 해주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보면 감기로 콧물을 흘리기 일쑤이다.

감기정도는 약을 먹는 것는 고사하고 그냥 냅두고 자란다.

 

바끌레 마을은 버스가 안다닌다.

택시도 전화해서 불러야만 온다. 가장 가까운 병원이 택시를 타고 5시간을 가야 한다.

그래도, 오는데 5시간, 가는데 5시간이다.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