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전북 고창군 가볼만한 곳 : 전봉준장군 생가터 / 뚜라조각공원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1. 8. 27.
728x90
반응형

요즘 고창을 둘러보고 있다.

고창에는 전봉준 장군 생가터가 있다.

생가터라고 해서 봤는데 집은 없고 그냥 잔디밭뿐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1855년 1월 10일~ 1895년 4월 24일)은 조선의 농민 운동가이자 동학의 종교 지도자였다.

동학농민운동 당신의 남접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전라북도 고창군 죽림리 당촌 몰락 양반 출신인 전창혁(일명 전승록, 다른 이름은 전형호(全亨鎬))와 김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녹두(綠豆)는 키가 152cm, 그 체구가 작아서 불린 별호라 한다

 

전봉준은 전제정권과 탐관오리의 부패를 여러 번 상소하여 개정하려 노력하는 등 민권을 제창한 혁명가요, 사상가였다.

 

전봉준은 최근에 드라마로도 방영되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 그는 동학난으로 주동자였으나.

나중에 동학난이 농민운동으로 격상되었고 장군으로 명명되었다. 

 

조선말기 조선은 부정부패하였고 양반들과 기득권 세력에 의해 농민들만 힘들어지는 생활이었다.

이 시기는 외세의 침입이 있어 국권이 상실위기에 놓였다.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적 지배세력에 의한 수탈과 억압에 반대한 민족운동이며 제국주의적 외세 침략에 맞선 국권수호운동으로 갑오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세운 최초의 민중항쟁이었다. 

 

전봉준이 교수형에 처한 이후 백성들은 〈새야새야 파랑새야〉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는 전봉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전래동요노래가사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안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마라

아래녁 새는 아래로 가고 위녁 새는 위로 가고 우리 논에 앉지마라 우리 밭에 앉지마라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손톱 발톱 다 닳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마라

위여-----위여-----위여--위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 새야

윗 논에는 차나락 심고 아랫 논에 메나락 심어

울 오래비 장가갈 때 찰떡 치고 매떡 치면 내가 왜다가 먹느냐 네가 왜다 까먹느냐

위여---위여----위여--위여-- 위여위여----

새야새야 파랑새야 우리논에 앉지마라

 

말그대로 건물도 없는 생가터만 남아있다.

그 당시 난을 일으켜서 가족과 일가가 죽거나 도망가서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딸은 죽음이 두려워 이름까지 바꾸고 사찰에 숨어 살았다.

지금은 재조명되면서 전봉준에 대한 평가를 다시 쓰고 있다.

 

전봉준 장군 생가터 바로 왼쪽 뒤쪽에는 뚜라 조각공원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찾는 사람이 없는지 관리가 안되고 있었다. 

잡초가 무성하다..

 

꼭 전봉준 장군의 후일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2001년에 복원된 생가

 

자료를 보니 고창군에서는 2001년 전봉준 생가터를 고증없이 복원했다가

 다시 철거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건물은 없고 터만 덩그러니 있는 것이다. 

 

전봉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는데 아쉬움만 남는다.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63번지(당촌마을)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