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인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의 생가이다. 황윤석은 1759년(영조 35)에 과거에 합격하고 추천으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이재난고(頤齋亂藁)』 등 3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황윤석은 당시 학자가 탐구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한 학자였고, 유학자이기도 했다. 또한 상수학자, 역사학자, 어학자이며, 사회 경제학자이고, 과학자이기도 하였다. 1986년 9월 8일에 고창군 민속자료 제25호로 지정되었다.
황윤석 생가는 황윤석의 선친인 황전이 건립하였으며 지금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가 남아 있다. 안채는 높은 축대 위에 세웠는데, 정면 6칸이고, 앞뒤에 퇴간을 둔 5량가의 일자형 초가로 전형적인 남부 지방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벽체는 안방에서 중방 사이를 모두 판벽(板璧)으로 하였고, 중방에서 하방 사이는 솟을동자를 세운 머름청판으로 꾸미는 등 격식을 갖추었다. 정면에서 볼 때 동쪽 맨 끝 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방 한 칸, 대청 두 칸, 부엌 한 칸의 순서이다. 대청 북쪽 벽 위에 평해왕씨 선조의 위패를 둔 곳이 있다. 원래 안채 뒤편에 사당(祠堂)이 있었으나 터만 남아 있고, 사랑채, 문간채는 소실되었던 것을 1909년에 다시 지었다.
황윤석은 학문적 관심 분야와 저술 분량으로 볼 때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거장 디드로에 견줄 만하며 21세기에 도래할 지식 정보화 사회를 예견한 선각자이다. 황윤석 생가는 전형적인 남부 지방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재난고』는 이재라는 인물이 10세부터 시작하여 63세 일기로 죽기 전까지 보고, 듣고, 배우고, 생각한 문학·산학·예학·도학·지리·역상·언어학·예술 등 정치·경제·사회·농·공·상 등의 여러 방면에 걸친 인류생활에 이용되는 실사를 총망라하여 일기 또는 기사체로 쓴 것으로, 6천장 57책으로 되어 있다
뒷뜰에는 큰 나무가 있어 듬직하다
뒷뜰에 있는 장독대들..
현재 사람은 살지 않는다. 문화재로 고창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부엌은 아니고 방에 불도 지키고 물도 데우는 아궁이
마을 입구에 있는 안내석
호남의 3대 실학자 중 한 사람인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이 태어난 곳이다
전라북도 고창의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
전라북도 순창의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1712~1781)
전라남도 장흥의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이 3명이 호남의 3대 실학자라 말한다.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길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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