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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남 해남군 가볼만한 곳 : 황조별묘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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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덕송리 황조별묘는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황조별묘

2003년 11월 24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산이면에 위치한 황조별묘는 정유재란(丁酉再亂)시 명나라에서 조선 구원군 수군도독으로 왔던 진린(陳璘)장군과 후손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享詞)하는 곳이다. 진린은 군선 500여척을 이끌고 와서 고금도, 녹도, 금당도 등에서 이충무공과 함께 왜적을 방어하였으며, 이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제문을 짓기도 하였다. 이곳이 진린과 관련된 것은 진린의 손자인 진영소(陳永 1644~?)가 명이 멸망하면서 진린의 유지에 따라 중국의 광주(廣州)로부터 관왕묘(關王廟)가 있는 고금도에 이주하여 거소를 정한데서 비롯된다. 그 뒤 진영소의 아들인 석권(碩權)과 윤권(允權)은 해남으로 이거하여 살며 명의 유민이란 뜻으로 황조동(皇朝洞)이라 하였다. 1679년(숙종5) 진린을 모시는 단을 만들어 제향하다가 1871년(고종8) 별묘를 건립하였다. 그후 1960년에 소슬 3문을 신축하였고 1976년과 1983년에 중·개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남 덕송리 황조별묘는 조선시대 정유왜란 때 구원군으로 온 명나라 진린 장군 관련 유적으로 한중 교류사를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사당으로 상량문이 남아 있어 목조 건물의 연대를 알수 있으므로 건축사적 의미가 있다.

 

황조별묘 사당은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장군과 그분의 자손들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해마다 청명절에 후손들이 제향을 드리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장군께서는 정유재란때 명나라 수군 5,000명을 거느리고 오셔서 노량해전에서 왜군을 섬멸하여 존망의 위기에 놓인 우리나라를 구해주신 큰 공을세우신 분입니다.

 

황조별묘...

정유재란때 명나라 진린장군은 병사 5000명과 함께 왜적을 싸워 이순신장군의 큰 힘이 되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는 진린장군의 손자 진영소는 할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전남 고금도에 이주하여 살았다.

그리고 진영소의 아들 석권, 윤권은 해남 산이면 이곳에서 살았다. 명나라 유민인것이다. 명나라 유민이란 뜻의 황조동이다. 이곳 마을이 황조마을이다.

다른 나라를 위해서 싸운것도 고마운데 조선이 좋아서 조선에서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

현재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은 이들의 후손이 아닐까...

 

 

주소 :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 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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