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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남 강진군 가볼만한 곳 : 해월루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2.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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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에서 해월루 라는 정자가 2곳이 있다.

한곳은 전남 해남군 북평면 한밭등길 20-1

한곳은 바로 오늘 포스팅하는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23-41

 

다산 정약용은 18년(1801~ 1818) 동안 유배생활을 보내는데 1801년 2월에 경상도 장기로 보내진다.

이때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1801년 11월에 정약용은 다시 전남 강진으로 이배된다.

다산은 강진 동문밖 주막 사의재에서 4년동안 지내다가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등에서 4년을 보낸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1818년 9월까지 10여년동안 보낸다.

다산이 윤단의 산정으로 오게 된 것은 어머니가 해남 윤씨였기 때문이다. 외가 쪽 친척의 소유였던 산정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다산의 외가는 해남 윤씨의 대표적 인물인 고산 윤선도의 가문이다.

 

나는 강진 백련사에서 해월루로 올랐다.

가는 길에는 백련사의 원구형 부도가 있었다.

부도는 승려의 사리를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이 부도는 이 곳에서 가장 크고 만들어진 시기가 빠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부도의 탑신이나 기단부에 당호 또는 기타 명문이 없어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

탑신은 원구형이며 탑신 당산쪽 사방으로 연꽃무늬의 연주문띠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특이한 기법이다.

옥개석(지붕틀)은 팔각인데 낙수면이 경사가 급하고 우동마루가 뚜렷하나 귀꽃이 없이 밋밋하게 처리되었다.

이 부도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팔각원당형에서 몇가지 변형된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기단부는 사각형에 가깝고 탑신은 거의 원형에 가까운 원구형인데 이러한 형태로는 국보 제102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토사흥법국사실상탑이 있다.

부도가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고려시대인 14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400m 지점에 해월루가 있다.

다산초당까지는 900m 이니까 거의 중간쯤에 있다.

이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의 명승 아암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기도 하다.

천천히 걸어도 약 30분정도 걸린다.

오솔길 주변에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루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 좋은 코스로 제격이다.

 

탁트인 강진만이 보인다.

지금은 우거진 숲이지만 예전에는 잘 보였으리라

 

강진의 해월루는 2007년 강진군에서 지은 누각이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 다산 정약용이 이 길을 거닐면서 강진만이 보이는 이곳에서 쉬어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아마 이곳에 누각을 지었을것으로 보인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다산초당에서 오솔길을 걸어 백련사 아암 혜장 스님을 만나 학문을 논하고 정치를 논하고 차를 마셨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6.16~1836.2.22)은 74세에서  18년동안 인생의 4분의 1을 유배로 보내졌다.

신유박해와 을묘박해로 눈 밖에 났는데 정조가 죽고 어린 순조의 섭정을 맡은 정순왕후가 천주교 탄압과 남인에 대한 숙청작업을 시작한다. 당시는 남인과 노론이 당파의 주류였다.

조선시대의 정치는 당파싸움의 판이었다.

 

지금은 정당정치인데 별반 다를게 없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 대한 탄압과 수사과 구속을 한다.

이 정권이 바뀌면 또 그럴것이다.

정치란 바르게 다스린다 라는 뜻인데 이게 뭡니까. !!

정당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여야 한다.

 

 

주소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23-41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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