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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남 보성군 가볼만한 곳 : 대원사 (드론 영상)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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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산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3년(503) 아도 화상에 의해 창건된 백제고찰이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5교 9산중 하나인 열반종의 8대가람으로 교세를 크게 떨쳤다. 

고려시대에는 조계산 송광사의 16국사중 제5대 자진원오 국사가 강하도 선원사에서 팔만대장경 판각불사를 마치고 대원사로 내려 와서 선원과 승방을 크게 중창하고 선문염송을 판각하여 수행교재로 하였다.

조선 영조 35년(1759) 현정 선사가 다시 중청하여 12암자를 가진 대가람의 면모를 지켜왔다. 현대 문화재로 지정된 극락전과 지장보살도 등은 그 당시에 조성된 것이다.

 

해방 후 민족의 비극인 여순사건(1948)으로 극락전만 남기고 20여 전각이 소실되었다. 1990년 대원사 복원불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선원과 승방, 일주문, 천불전, 성모각, 김지장전, 황희영각, 금종루,. 청풍각, 사천왕루 등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대원사에는 보물 2점과 지방유형문화재 2점이 있다. 극락전 안벽에 그려진 관음보살과 달마대사의 벽화는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3월 보물 1861호로 지정되었다. 1766년 조성된 지장보살도와 시왕도는 보물 1800호 이다.

고려 원종때 조성된 자진국사부도는 지방유형문화재 35호이고 대원사 극락전은 지방유형문화재 87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대원사 벚꽃길은 한국 100대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었다. 6km 벚꽃길은 풍수로 치면 탯줄에 해당되고 절터는 모태에 해당된다. 하늘의 봉황이 내려앉은 봉소형국에 자리를 잡았다. 인근의 대원사 타벳박물관, 백민미술관, 서재필 생가 및 기념공원, 주암호와 연계되는 교육문화탐방 루트가 있어 해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천봉산 자락에 대원사가 있어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원사 입구족에서 등산로를 따라 갈 수 있다.

 

 

대원사는 지방유형문화재 제87호 극락전과 지방유형문화재 제53호 대원사 자진국사 부도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로 백제 무령왕 3년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고 고려시대 조계 제5세 원오국사가 중건하였다. 

6.25 이전 까지만 해도 10여동의건물이 유존되었으나 여순사건 때 거의 폐허화되었고 이후 재건되었다. 현재는 템플 스테이 등을 운영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신 경이 지장보살 본원경이다. 부처님은 마야부인을 위해 도리천궁에 가셔서 지장보살 본원경을 설하였다. 부처님은 자신을 낳고 7일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다하지 못한 효를 성불하신 후에 지장보살 본원경 설법을 통해 하신 것이다. 우리 불자들은 지장보살과 같은 대원력을 세우고 홍익인간의 마음으로 보살의 삶을 살아야 한다. 

대원사 석실불감 부모지장은 앞면이 눈물흘리는 아버지 지장보살이고 뒷면은 가슴에 맺힌 것이 많은 어머니 지장보살이다. 자식들이 나무의 꽃이라면 보이지 않는 뿌리는 나를 있게 해준 부모님이다.

뿌리가 다치면 나무가 병들듯이 부모님을 향했던 나쁜 감정은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부모님께 가졌던 불만이나 불손한 행동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석실 부모지장을 시계방향으로 세바퀴 돌면서 나무 지장왕보살을 염불한다.

 

 

낙태아를 구제하는 태안지장보살

백제고찰 지장도량 대원사에서는 태안지장보살을 봉안하고 1년에 2번찍 백일기도를 봉행하고 있다. 양수에서 성장하는 태아의 영을 태아령이라 부르고 태아령을 구제하는 보살을 태안지장보살이라고 부른다. 오른손에는 아미타불을 모신 석장을 짚고 왼손으로는 태아령을 상징하는 동자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에 태어나는 신생아가 2017년 기준으로 40만명이다. 그런데 세상의 햇빛도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는 어린 생명이 50만명이 넘는다.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중절수술까지 생각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금 이땅의 산하는 온통 눈감지 못한 한맺힌 어린 영혼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차 있다. 구만리 장천을 중음신으로 떠도는 어리고 어린 영혼들의 슬픈 몸부림으로 가득차 있다 .

부처님께서 장수멸죄경에서 사람들에게 병이 많고 제명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유산이 근본 원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장수멸죄경에는 낙태의 죄업과 그 죄업으로부터 벗어나는 가르침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부처님의 크신 자비와 태안지장보살의 큰 서원에 의지하여 씻을 수 없는 부모의 죄업을 참회하고 태아영가의 해원을 위하여 지자옵살께 기도하기 않을 수 없다.

 

 

태안지장보살의 슬픈 설화

이승과 저승 사이에 삼도의 강이 흐른다. 이 강가 모래밭에는 부모 자식의 인연이 두텁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이와 햇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 핏덩이들이 모래밭에서 고사리 손을 모아 탑을 쌓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 삼도의 강을 건너려 고사리 손을 모아 돌 하나를 들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합장하고 다시 돌을 들어 아버지를 생각하면 탑을 쌓는다. 그러나 하나의 탑이 완성되어 갈때쯤이면 저승의 도깨비들이 나타나 호통을 치며 쇠방망이로 탑을 부숴버린다. 애써 쌓아 올린탑이 무너져 내리면 어린 영혼들은 그만 모래밭에 쓰러져 서럽게 서럽게 울다 지쳐서 잠이 들어 버린다. 그 때 지장보살님이 눈물을 흘리며 나타나서 옷자락으로 어린 영혼을 감싸 안으면서 "오늘부터는 나를 어머니하고 불러라" 하면서 삼도의 강을 건네 준다고 한다. 가슴을 에이고 뼈를 깎는 듯한 슬픈 이야기이다. 

저승의 어머니 지장보살에 의탁하여 부모의 죄업을 씻고 어린 영혼을 천도하는 의례는 이로부터 시작된다.

 

 

대원사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는 연못이 있어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낼수 있는 곳이 있다.

다리도 깜찍하고 이쁘다.

 

장군샘은 천봉산 호적봉의 정기가 깃든 물이다. 이 샘물은 마시면 기혈이 열려 호랑이처럼 힘이 세진다는 말이 전해진다. 

보성군은 임진왜란때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호국릐 성지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최고의 감동을 주는 이순신 장군의 문장은 보성군 열선루에서 작성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보성에서 10일간 머물며 군량을 마련하고 군기를 수선하여 전투준비를 하였다.

이순신장군은 위장과 장이 좋지않아 복통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그때마다 발효차와 고뿔차를 끓여 마시며 복통을 치료하고 전투준비를 할 수 있었다. 

보성 대원사의 천봉떡차와 장군샘물은 이순신 장군의 복통을 치료한 영험한 샘물이다.

 

 

대원사의 극락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이다. 

대원사의 큰 법당인 극락전은 불교의 이상세계인 서방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대원사 극락전 관음보살과 달마대사 벽화는 보물 제1861호이다.

관음보살도와 달마 대사도는 대원사 극락전 내부의 동.서 양 벽면에 그려 놓은 벽화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서쪽 벽에 그려진 관음보살도는 기암괴석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연화 의자에 앉아 있는 백의의 관음보살과 선재 동자를 그렸다.

선재 동자는 관음보살의 뒤편에 서서 청조를 안고 있다. 동쪽 벽에 그려진 달마 대사도는 선중에서 즐겨 그렸던 헤가단비의 옛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큼직하게 그려진 달마 대사와 달리 헤가를 작게 그려 달마의 모습을 부각시켜 묘사하였다.

벽화가 그려진 시기는 대원사 티벳박물관에 소장된 "보성천봉산대원사 대법당시왕전여중료중창급단청겸지장개금화각첩기문"이라는 현판의 기록으로 보아 지장보살도와 시왕도(보물 제1800호)를 조성하면서 1767년 대법당 중창 때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는 운문사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18세기 중후반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활약한 의겸파 화풍을 보여 주고 있다.

 

대원사를 방물했을때는 미얀마에서 온 남자 승려가 있었다.

불교를 배우러 왔다고 했다.

미얀마는 현재 군부독재가 정치를 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대원사 왼쪽에는 티벳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 보물 1800호로 지정된 지장보살도와 시왕탱화 10점 및 사자탱화 2점을 소장하고 있다. 대원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는 조선 영조 42년(1766)에 조성한 것이다. 화기에 따르면 지장보살도는 비구니 묘성스님 등이 돌아가신 어머니 정씨 영가를 위하여 대시주가 되었으며 시왕도의 시주자들도 대부분이 스님들인데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공덕을 빌고자 불사에 동참했음을 밝히고 있다. 조선 중기 해인사, 송광사, 선암사, 흥국사 등의 띄어난 탱화를 남긴 의겸의 화맥을 이은 색민을 수석 금어(불화가)로 하여 신심과 필력을 갖춘 18명의 화승들이 참여하여 이룩한 조선중기의 뛰어난 성보 문화재이다.

 

 

대원사 입구에는 김지장 성보박물관이 있는데 찾는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보통은 성보박물관은 문이 꼭꼭 닫혀 있는게 안타깝다.

 

신라왕자 김지장이 중국불교 지장왕보살이 되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 한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신라왕자 김지장스님일 것이다. 김지장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1500년이 되는 696년에 신라 성덕왕의 왕자로 태어났다. 24살에 출가하여 지장이라는 법명을 받은 뒤 신라에서 선청이라는 흰 삽살개 한 마리와 오차송이라는 소나무 종자, 황립도라는 볍씨와 조, 금지차라는 신라차를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구화산에 이르러 초인적인 고행과 뛰어난 법력으로 그 곳 사람들을 교화하다가 99세 되는 794년 7월 30일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고 열반에 드셨다. 

"내가 열반한 뒤 내 몸을 화장하지 말고 돌함에 넣어 두었다가 세 해가 지난 뒤 열어보아라, 만일 그때까지 썩지 않으면 그대로 개금하여라" 스님의 유언에 따라 세 해 뒤에 돌함을 여니 얼굴은 살아 있는 듯하고 살갗은 부드럽고 향내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797년 구화산 남대에 등신불을 모시고 그 위에 법당을 지으니 오늘날 구화산의 육신보전이 바로 그것이다. 신라왕자 지장스님의 육신성도를 통해 중국사람들은 스님을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게 되었고 이로부터 중국불교에 육신보살의 전통이 생겨났다.

 

대원사에는 보물들이 있고 지장보살을 만날 수 있다.

대원사 뒤에는 천봉산이 있어 아늑한 기분이 든다.

녹음이 우거진 대원사를 보고 나서 왼쪽으로 아주 조금만 가면 티텟박물관이 있어서 같이 보면 좋겠다.

티벳박물관은 관람시간이 있어서 일찍 가야 한다.

입장료는 없다.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길 5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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