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태백산맥 문학기행길에서 만나는 남도여관.. 구 보성여관이 보성군 벌교읍에 있다.
판자벽에 함석지붕,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이 2층 건물을 옛 모습 그래도이다. 일본인들은 강점기 동안 전국적으로 이런 건물들을 수없이 지었는데 그동안 무차별젹으로 헐어 버리고 시멘트 건물들을 짓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이런 건물들은 구경하기 어려운 귀물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역사는 문자의 기록만이 아니다. 유물을 보았을 대 설명이 필요없이 지난 시대를 한순간에 실감하게 된다. 수난과 고통의 역사일수록 그 시대의 유물은 남겨지고 보호되어야 하는 가닭이 여기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 본정통이라고 불렸던 이 길에 이 건물이 원형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건물은 2004년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132호)으로 지정되어 2012년 6월 7일 중건 개관하였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숙박업소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에도 이 건물은 여관이었고 그때의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 소설에서는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한동안 숙소로 사용하던 남도여관으로 그려졌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거? (태백산맥 3췅 85쪽)]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속 "남도여관" 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보성여관"은 일제강점기 벌교의 가장 번화한 중심가에 위치하였으며 당시에는 5성급 호텔을 방불케 할 정도의 규모였다.
2004년 역사 및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제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1층 입구에는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입장료도 받는다.
1층 안쪽에는 세미나실처럼 꾸며진 곳이 있다.
관람시간이 있으니까 꼭 방문하실때는 참고 하세요
관람시간 : am 10:00~ pm 5:00 입장은 pm 4:30 까지 가능하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보성여관은 남도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소설에서 남도여관은 경찰토벌대장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보성여관은 한국의 근, 현대사 속에서 탄생한 일본식 여관으로 그 시대의 사회구조와 근대기 건축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2004년 근대건축사적, 생활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등록문화제 제132호로 등록되었다.
보성여관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있다.
보성여관이 일제강점기때 지어진 건물이어서 그런지 방은 다다미방으로 만들어졌다.
다다미방 한쪽에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다미방은 2층이며 총4개 방으로 만들어졌다.
옆방과의 경계는 미닫이 문으로 만들어졌다.
다다미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복도이다.
다다미방에 단체손님이 아니고 개인이라면 이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보성여관은 2004년 12월 31일 등록문화제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최초 건립연도 : 1935년 8월 29일 상량하였다.
설립자 : 강활암
현재 소유자 : 문화재청
관리단체 : 문화유산 국민신탁
1935년에 건립된 보성여관은 근현대사의 기억과 흔적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문학사적 가치가 높은 장소이다.
보성여관은 한국에 드물게 남아있는 한옥과 일식이 혼합된 일본식가옥으로 근대건축사적 가치와 생활사적 가치가 높다.
보성여관의 1층은 객실로, 2층은 연회장으로 꾸며졌다. 당시 일본식 여관은 오늘날의 카페처럼 숙박과는 별도로 차를 팔았는데 2층 연회장에서 사람들은 차를 즐기며 모임, 파티,상거래 등을 하곤 했다. 2층 연회장은 현재 보성여관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벽없이 문짝으로 방을 나누는 전통적인 일본식 다다미방 4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일본 주택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구 보성여관은 1935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여관이다. 근대 이전에 벌교는 낙안군에 속하는 마을 2개로 이루어진 작은 포구였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은 벌교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지리적 요건을 발견하였고 1910년 무렵부터 일본인 사업가와 자본가들이 벌교포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벌교포는 여자만을 끼고 있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이며, 육상 교통의 중심지로 상,농,공업의 중요한 도시로 자리잡았다. 경전선이 건설되고 교통이 발전하면서 벌교의 인구수가 급격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보성여관은 이와 함께 탄생한 일본식 숙박업소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소설 태백산맥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으로서 시대적으로 근대 역사적 사건(여순사건, 한국전쟁)을 지역적 무대로 벌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하소설이다. 해방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 등의 세월을 거치며 한 때 번영했던 벌교의 영화는 잠시 주춤하였고 지방의 작은 도시로 변모해 가던 중 벌교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게 된 것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비롯되었다.
소설 속 남도여관으로 등장하는 보성여관(등록문화재 제132호)은 읍내 하나뿐인 여관이자 현부자 집 소유의 여관,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의 숙소로 묘사되었다.
벌교는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보성군에 속한 벌교읍을 말하며 보성군 전체 인구 49,166명 중 벌교읍 인구는 15,079명(30.7%)를 이룬다. 보성군 면적 663.47㎡, 행정구역 2츱 10면, 법정리 126리(운영상리 315리), 자연부락 593마을 (2011년 보성군 통계연보)
본래 낙안군에 속했던 벌교는 일본에 의해 1908년 낙안군이 폐군되면서 순천군과 보성군으로 분할되는데, 이때 벌교지역이 보성군에 편입된다. 한일병합이 되기도 전 지방사의 뿌리가 뽑힌 벌교는 통한의 역사를 간직한 채 일제강점기를 맞이하고 항일감정에 대한 표출은 의병운동 등으로 역사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지리적으로 순천만, 여자만을 끼고 고흥, 순천 등으로 빠지는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일본은 현재의 벌교읍에 터를 잡고 수탈을 위한 식민지 포구로의 개발을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벌교의 확장은 벌교민들의 상징적 근원인 "홍교의 폐교"라는 위험을 가져왔지만 기상과 고집 있는 벌교민들의 힘으로 지켜내면서 벌교의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보성여관은 우리나라 지방 중소도시의 근대문화사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 공간적 증표로서 문화사적으로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이에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문화재청, 보성군청과 함께 보성여관이 갖는 우무형적 가치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보성여관 보수 및 활용 계획"을 통해 문화재로서 보성여관의 건축적 가치를 지속시키며 이의 문화사적 가치와 삶의 가치를 왜곡하지 않도록 노럭하였다.
보성여관에 축적된 오늘날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해 나갈 것이다.
2012년 6월 개관한 보성여관은 남도의 문화재로 거듭날 것이다.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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