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전남 순천시 가볼만한 곳 : 문화의 거리 (드론 영상)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5. 5. 27.
728x90
반응형

전라남도 순천시 향동 일대에는 문화의 거리가 있다.

순천시 문화의 거리는 2009년 '1,000년의 역사 문화가 숨 쉬는 거리 만들기' 사업이 국토 해양부가 추진하는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사업을 본격화하였고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이 등장하였다.

순천시 문화의 거리는 2004년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시작하였고 2005년 순천 문화도시 만들기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2019년 현재까지 총사업비 30억원 (국비 15억, 시비 15억)을 투입하였다

 

 

순천 문화의 거리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기존 도심 재생 사업을 통해 옛 이야기가 살아있는 장소, 지역 문화 예술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2020년까지 장기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업이다. 순천 문화의 거리에는 순천시청소년수련관이 자리 잡고 잇었고 순천시영상미디어센터 두드림이 들어오고 한옥글방, 서문안내소 등이 생겨났다.

 

 

순천 문화의 거리는 상가 빈 점포나 일반 주택을 개조해 공방, 미술작품 전시실, 고서화 및 서예 골동품 취급 가게, 염색, 카페, 전통찻집, 갤러리, 한옥글방, 낙안읍성가야금병창보존회 등 문화예술 관련 업종이 입점해 있다.

순천시의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은 문화마당 조성사업, 거리 디자인 개선사업, 흙담장 설치, 주민참여사업 등 사업 분야와 문화예술업종 지원, 도심탐방프로그램, 청소년 축제 및 체험 프로그램 등 프로그램 분야로 나누어 추진되고 있다.

 

 

순천 원도심에 위치한 문화의 거리는 순천시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2005년부터 기반을 닦고 2009년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이 시행되면서 조성된 곳이다.

현재 영상미디어센터와 한옥글방, 그리고 다양한 갤러리와 공방 등이 문화의 거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어 순천의 문화 인프라 구축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의 거리 주변에는 순천의 유교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옥천 일대와 기독교 유적지가 풍부한 매곡동이 있기 때문에 순천의 역사를 살펴보기에 좋다. 주말에는 문화의 거리에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어 주민 및 여행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잇다.

문화의 거리 한복판에 건립된 청소년수련관은 청소년 전용의 교육, 문화, 휴식 공간으로서 지역주민의 사랑방으로도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청소년수련관의 대각선에 위치한 삼성생명 일대는 조선시대때 지방 관청이 들어섰고 1919년에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이 설립되었던 장소였다. 문화의 거리 진입로는 조선시대의 관아와 부속건물들이 즐비했던 장소이다.

 

 

복합문화공간 한옥글방은 순천시 문화예술과에서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시민을 위한 개방된 공간이다.

 

 

복합문화공간 한옥글방은 독립운동가 성동준의 생가터이기도 하다

1944년 일본구주제대 법과를 졸업하고 학병으로 동원되었으나 중국 소주에서 김영남 등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일본군 60사단을 탈출하였다.

제3전구 충의구국군사령관에 도착하여 미국 고문관에게 일본군 문서와 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사실은 3전구 사령부에 보고되어 전선일보에 대서특필되었다. 이러한 공적으로 구국군 정치부 대일선전과에서 박 영과 함께 선전활동을 전개하다 광복군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순천부읍성 서문터이다. 

원형이 잘  보존된 낙안읍성과 순천읍성의 흔적을 찾기란 무척 어렵다. 일제의 시가지 정비로 성벽이 하나둘 헐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읍성 안에 존재했던 조선 왕조의 행정기관 건물들은 식민지 통치기관으로 바뀌거나 새로 지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순천 출신의 서정인 작가가 쓴 [남문통]이라는 단편소설을 통해 살짝 엿볼 수 있다.

원도심에 읍성이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종 12년(1430)부터 성벽이 흙에서 돌로 대체된 석성을 분명하다. 조선 초기는 왜구의 침략, 홍건적의 침입, 명과의 갈등으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매우 높었던 시기였다 성곽 축조가 국가적 차원의 중요한 사업으로 부각될 수 밖에 없었다. 조선 초기만해도 축성 사럽은 산성위주였다. 그러다 대마도 정벌로 왜구의 침입이 감소하고 명나라와 북방 민족과의 관계도 점차 안정화되면서 축성 사업의 방향은 바뀌기 시작했다. 평지에 읍성을 축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때부터 토성이었던 읍성은 석성으로 바뀌기 사작했다.

 

순천부읍성은 1430년 (세종12) 최윤덕이 둘레 약 1,580m, 높이 약7m 의 석성으로 쌓았으며 성의 부대시설로서 적대 6개소, 성문 4개소, 여장, 우물 6개소, 못 8개소, 해자 등이 있었다. 옹성은 2개소이며 1453(단종 1)에 완성하였다.

성내에는 아사, 객사, 내아, 공고, 형청, 양사제, 군기고, 진휼창, 사령청, 관노청, 옥사 등 지방의 행정을 담당하였던 주요 시설들이 있었다. 서문은 1909년에 이병휘 군수가 부임하여 성곽을 철거하기 시작하여 1916년에 헐렸으며 현재는 도로가 개설되었다.

 

 

순천시 문화의 거리 골목에는 추억의 사진들이 작품으로 설명과 함께 걸려 있다.

 

 

도로에서 길게 된 문화의 거리이다.

이 문화의 거리 양쪽에는 여러가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상가들이 있다.

 

 

위에서 본 순천부 읍성이다.

 

 

순천 문화의 거리에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산책을 해도 좋았다. 

 

 

초.중.고교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천연염색이나 갤러리 견학 등 체험 프로그램과 순천시 청소년수련관의 목요 열린무대, 한옥글방, 내.외국인 음악 동호인을 중심으로 한 야외공연, 실험적으로 실시하는 서양와 길거리 전시회 등이 열리고 있다. 단순히 거리나 광장 등의 물리적 시설만을 조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화의 거리 조성과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입점한 지역 문화 예술 종사자들의 공간 입주와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순천 문화의 거리에 입점해 있는 주요공방은 나래공방, 아기자기, 석가헌, 뮤제이옹 등이다. 나래공방은 천연의 재료로 직접 염색한 천으로 침구류, 방석 등을 맞춤 제작하고, 모시 발, 앞치마 등 각종 생활소품과 다도 용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으며, 손수건이나 스카프를 이용해 누구나 쉽게 천연 염색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기자기에서는 공예방 클레이, 가죽제품 주문 제작 및 관광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석가헌은 민족의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수공예로 표현한 생활용품과 예술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뮤제이옹은 금·은·구리 바탕에 갖가지 유리질의 유약을 녹여 붙여서 만드는 칠보공예 작업실로 일일체험, 자격증 취득 등을 위한 활동을 하는 ‘쥬얼리 아틀리에 겸 숍’ 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작가들의 작업실과 전시실 등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순천 문화의 거리는 야간 보행등, 예술 조명, 바닥 분수 조경 시설이 갖추어진 시민의 휴식 공간이자 복합 생활 문화 공간이다.

순천시 원도심이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해서 청소년들과 일반이에게 좋은 문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향동 65-24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