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수정봉 정상에 있는 성터, 옥산성은 1974년 2월 16일 경상남고 기념물 제10호 옥산성지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거제 옥산성"으로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거제 옥산성은 거제면의 동쪽에 위치하는 계룡산의 수정봉 꼭대기 부분을 빙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수정봉성이라고도 부른다. 성문 밖에는 '옥산금성'이란 글씨가 새겨진 큰 암벽이 있고, 성내 동쪽에는 이 성을 쌓은 내력을 전해주는 비석이 있다. 비석의 내용에 의하면, 이성은 1873년(고종 10)에 당시 거제부서였던 송희승이 읍성을 쌓을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으나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수정봉에다 읍성을 쌓기로 하고, 주민을 강제로 동원하고 돈을 거두어 8개월만에 성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을 쌓는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무리한 부담을 주었다 하여, 부사 송희성은 파직 당하였다고 한다.
산성은 둘레 778m, 높이 4.7m, 폭 3m로, 직경 40~80cm 정도의 자연석을 다듬어 산 능선의 굴곡을 따라 타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성안의 요소에 누각과 무기고, 연못 등을 만들었으며 동,서,남,북 네 곳에 성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적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는 남쪽과 서쪽의 성문은 입구를 'ㄱ'가 ㅎ형의 또 다른 성으로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였다. 옥산성은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우리나라 산성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옥산성은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읍 동산리 수정봉 정상에 쌓은 산성으로, 높이 4.7m, 둘레 778.5m이다. 수정같이 솟아있어 '수정봉성'이라고도 부른다.
성문 밖에 세워진 비석에 새긴 글에 의하면 조선 고종 10년(1873) 거제부사 송희승이 조정에 지방의 행정·경제·군사 중심지에 읍성을 쌓자고 건의하였다. 이에 왕은 거제의 읍터를 3번이나 옮겨서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하여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자 송희승은 대신 수정봉에다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8개월만에 성을 완성시켜 군기와 군량을 비축하고 해변방어의 거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후 송희승은 백성들의 강제동원 및 임금의 명령을 어긴 죄로 파직되었다.
동산리와 서상리를 연결하는 곳에 있는 성으로 동·서·남·북 4개의 문이 있고, 성안에는 우물이 있으며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후 축성기록이 없어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산성으로 불린다.

옥산성은 거제 계룡산 자락의 수정봉(해발 143m) 정상 부분은 타원형으로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동쪽은 폭이 넓고 서쪽은 폭이 좁은 표주박 형태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정산성'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서쪽 성문 입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이라는 문구를 따라 '옥산성'이라 부른다. 옥산성이 자리한 거제면 일대는 현종 5년(1664)에 거제의 읍치를 고현 지역에서 이곳 거제면으로 옮겨 조선시대 말기까지 거제현 관아가 위치한 곳이었다. 옥산성이 만들어진 시기는 성 안에 설치되어 있는 축성비의 내용에 따라 고종 10년(1873)에 거제 백성들이 힘을 모아 축조한 것으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마지막 단계에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2017년 성내 집수지 및 2020년 건물지 발굴 당시 7세기의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옥산성의 최초 축조 시기는 7세기(통일신라시대) 이전임이 확인되었다. 성을 쌓는데 쓴 돌은 가까운 계룡산 자락과 인근 야산에서 구해온 것으로 크지 않은 막돌을 사용하였고 현재 성곽은 원상태로 잘 남아 있다. 문지는 서문지와 동문지는 2개가 있는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성문 입구를 사각형 내옹성으로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고 돌계단을 두어 성안으로 출입하게 하였다. 또한 성 안에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 투석용 몽돌 저장시설 등이 남아 있다.
*퇴뫼식 산성 : 산의 꼭대기를 중심으로 하여 산의 7~8부 능선에 따라 거의 수평이 되게 성곽을 한 바퀴 둘러쌓은 산성
* 읍치 :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
* 내용성 : 성곽에 난 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안쪽에 설치한 이중 성곽

1호 건물지
2019년 도지정문화재 보수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돌로 쌓은 기단과 계단을 갖춘 초석이 있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높이가 약 1m 정도인 기단은 처음 축조된 기단석에 덧붙여 한차례 증축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계단은 기단부 앞쪽에 3개가 설치되었다. 확인된 초석으로 보아 정면 6칸, 측면 2칸의 건물지로 규모는 길이 17.5m, 너비 5.6m, 면적 98 ㎡ 이다.
건물지의 벽은 흙과 돌을 섞어 축조하였고, 벽의 기초부에 회백색의 점토를 발라서 미장하였으며 바닥에는 박석을 깔았다.
출토된 기와로 보아 건물지의 축조시기는 조선시대 후기로 판단되며 이 건물지 왼쪽에 세워져 있는 '옥산금성축성비'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이 건물을 벽에 회를 발라 미장한 점, 바닥에 박석을 깐 점, 그리고 난방시설인 온돌 시설이 없는 점으로 보아 주거시설이라기 보다는 행정 또는 사무 등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 기단 :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 초석 : 주춧돌, 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 놓은 돌
* 칸 : 전통가옥에서 기둥과 기둥사이를 일컫는 말
* 박석 : 얇고 넓적한 돌


거제 옥산성은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산1번지에 위치하는 수정봉에 축조된 퇴뫼식 석축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벽은 기반암을 정리하고 기단을 쌓은 뒤 성벽을 올린 것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 수리. 증축한 것이다. 성 내부에서 2기의 집수지와 9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이 중 집수지 1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시대에 재사용되었다.

서쪽에는 거제면 소재지가 보인다.


옥산성 정상에는 사각형 정자가 세워져 있어서 이곳에서 쉬었다 갔다.



둥근 돌들이 모여 있는데 이 돌은 투석용으로 전쟁때 이 돌을 던져서 싸울때 사용한다.

옥산성에는 우물도 있었다.

우물 집수지를 조사하는 전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옥산성 입구이다.


옥산성은 수정봉 정상에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건물지와 우물등의 터가 보인다.


옥산성 정상에는 사각형 정자가 있었다.
이곳에 올라서면 확트인 주변이 잘 보인다.
옥산성은 거제면의 동쪽에 위치하는 계룡산의 수정봉 꼭대기부분을 빙 둘러쌓은 태뫼식 산성으로, 수정봉성 이라고도, 부른다. 성문 밖에는 ‘옥산금성’이란 글씨가 새겨진 큰 암벽이 있고, 성내 동쪽에는 이 성을 쌓은 내력을 전해주는 비석이 서 있다. 비석의 내용에 의하면, 이 성은 1873년(고종 10)에 당시 거제부사였던 송희승이 읍성을 쌓을 것을 조정에 건의 하였으나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수정봉에 다 산성을 쌓기로 하고, 주민을 강제로 동원하고 돈을 거두어 8개월 만에 성을 완성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을 쌓는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무리한 부담을 주었다 하여, 부사 송희승은 파직 당하였다고 한다. 산성은 둘레 778m, 높이 4.7m, 폭 3m로, 직경 40~80m 정도의 자연석을 다듬어 산 능선의 굴곡을 따라 타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성안의 요소에 누각과 무기고, 연못 등을 만들었으며 동, 서, 남, 북 네 곳에 성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적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는 남쪽과 서쪽의 성문은 입구를 ‘ㄱ’자형의 또 다른 성으로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였다. 옥산성은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어 우리나라 산성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산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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