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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남 완도군 가볼만한 곳 : 장도. 청해진유적지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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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좌리 앞 바다에 전복을 엎어놓은 듯 둥글넓적한 섬 장도(일명 장군섬)가 있다.

마을에서 장도까지의 거리는 약 180m 쯤 되고 하루 두 차례씩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 걸어갈 수 있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유명한 무장 장보고 장군과 그가 이룩한 청해진의 유적지이다. 장보고 장군은 이곳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삼해의 해상권을 장악, 신라, 일본, 당나라 3국의 해상교역에서 신라가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당시의 유적으로 장도에 외성과 내성이 있었다고 전하며 현재 유적 성역화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당시 화려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와, 토기 등 여러 유적과 유물이 장도를 중심으로 완도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물이 빠졌을 때는 장도 남쪽 갯벌에서, 원래 청해진을 방비하기 위해 굵은 통나무를 섬 둘레에 박아놓았던 목책의 흔적이 드러난다. 유적으로는 청해진성, 와당편 다수, 토기편, 사당, 법화사지터 등이 있다.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인 장도(將島)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청해진은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장보고(?∼846)는 평민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장군이 되었으나, 해적들이 신라인을 노예로 삼는 것에 분개하여 신라에 돌아와 왕의 허락을 받고 828년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장보고는 이후 왕위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846년 암살당하였고, 문성왕 13년(851)에 청해진은 폐쇄되었으며, 장도는 섬 전체가 계단식 성의 흔적만 남게 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연차적인 발굴을 진행한 결과, 청해진유적 성(城)의 총 길이는 890m로 축성방법이 고대 판축기법에 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섬 입구 방어용 목책으로 추정되는 원목렬은 총 길이 331m로 대부분 참나무 기둥을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한편, 출토유물인 연화문 암·숫막새기와, 토기편병, 해무리굽청자편 등과 섬 입구 원목렬 시료를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한 분석 결과, 9세기 중반경으로 확인되었다. 이로써 이 유적이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대사가 활동한 9세기경에 축성·사용된 것이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다.

장도 유적지 내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꼭 볼일을 보고 탐방해야 한다.

섬주변 바다에는 목책을 설치한 흔적이 있어서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을 방지했다

 

우물이 외성문 밖에 위치해 있다.

섬이라서 제일 낮은 곳에서 우물을 팠을 걸로 예상된다.

 

외성문을 지나 청해진 성 중심입구에 위치한다.

 

썰물때는 이렇게 다리가 아닌 바다를 통해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해신 드라마 세트장 청해포구를 찍은 곳은 다른곳이다. 

이곳은 진짜 청해진이 설치됐던 곳이다.

 

완도읍에 다다르기 전 왼쪽편에 작은 섬 장도(장군섬)가 있다.

이곳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고 남해를 주름잡으며 해적들을 소탕한 근거지이다.

마을 입구에서 180m 다리를 건너가면 청해진 장도에 도착한다.

 

이곳을 관리하기 전에는 장도 바로 앞 주민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문화재가 발견되면서 지금은 문화재구역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완도하면 장보고이다.

그의 흔적을 꼭 둘러보자.

 

주의할 점 : 장도 청해진 유적지내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탐방하기 전에 꼭 주차장에 있는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가자

 

 

주소 :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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