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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남 장흥군 가볼만한 곳 : 다산사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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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다산에 위치하는 다산사는 삼족당공이 서재용으로 세운 건물이다.

이어 영이재공, 존재공 등 3대가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1902년 장흥의 유림들은 존재공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서재 위쪽에 단을 세웠다. 그 후 후손들은 1950년 서재를 재실로 변경하였고 한편으로는 1970년초까지 후손들의 강학 장소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1984년에 사우를 건립했다.

 

존재 위백규(1727~1798)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02년 소석 김노현(1845~1915)선생등 장흥지역 사림들의 주도로 다산재 위에 설단하고 단비를 세워 향사해왔다. 이후 1984년 안항공파 웅천종중에서 사당을 창건하여 존재선생을 배향하였다.

2003년에는 존재 위백규 선생, 서계 위백순선생, 죽오 위도한 선생, 다암 위영복 선생을 추배하여 4위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지역 유림이 주관한 향사우 제향을 하였다. 

2018년부터는 후손들이 주관하는 문사우제향으로 전환하였다고 한다.

 

다산사로 들어가는 길은 잘 모를수가 있다. 다산사에서 길이 끝나기 때문에 동네도 없다.

대문이 닫혀있어서 안에 들어갈 수 없고 드론으로만 찍을 수 있었다.

 

 

 

2003년부터 모셔진 4분의 이력을 살펴본다.

존재 위백규(1727~1798)선생의 자는 자화, 호는 존재,계항으로 영이재공과 평해위씨의 장자이다. 존재 선생은 천문, 지리, 율력, 복서, 산수 등에 통달하고 특히 역에 정통하였다고 한다.

정조때 68세 되던 해 호남 위유사로 내려온 서영보의 천거로 사용에 제주된 후 선공감부봉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1796년 명이 거듭되어 입궐하여 정조대왕에게 만언봉사를 올리고 옥과현감을 제수받아 1년 4개월 재임하였다. 그후 장원서별제와 경기전령에 임명되었으나 노병으로 취임하지 못하고 7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존재 선생의 문집에는 존재집 저서에 지제지, 환영지, 전형신보, 예설, 경서조대, 경서차록, 고금 시소전기서설 등 총 10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고 한다.

 

서계 위백순 선생의 자는 자건, 호는 서계로 영이재공과 의인 평해오씨의 네째이다. 1798년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존재 선생의 행장을 찬술하고 장려후학 하였다. 1936년 4권 2책으로 서계유고집이 간행되고 2012년 국역으로 간출하였다. 교지 1매가 현존한다.

 

죽오 위도한 선생의 자는 슬혜, 호는 죽오이며 동산공과 장흥임씨의 차자이다. 병계 윤병구 선생이 근찬한 청금공 묘갈명 비문을 종중에서 70여년 소장해오다가 1824년 농안리 화운동묘소에 선생의 주도로 세웠다. 1825년 장흥위씨 족보 의문에 대해 근지하였다. 

 

다암 위영복 선생(1832~1884)의 자는 방서, 호는 다암이며 도천과 인천이씨의 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다산재에서 족형 연암거사공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73년 장천재 중수에 농포공과 문중 유사를 맡아 1만여명을 동원하여 4차 중수에 공현하였다. 1875년 존재집을 간행하여 오늘늘의 존재선생이 있게 하였다. 

 

다산사는 3칸 사당 1동, 5칸 강당 1동, 내삼문 1동, 단소, 외문 1동, 묘정비 1기, 관리사옥 1동, 의연비 3기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지역마다 세력있는 성씨들이 있는데 장흥에는 장흥위씨가 세력과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해남에는 해남윤씨, 안동에는 안동김씨.. 그 예이다.

지역사회에서 큰 인물과 중요한 사람들은 지역에 선한 영향력은 끼쳐야 한다.

명성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소 :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길 111-103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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