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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남 장흥군 가볼만한 곳 : 백산재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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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장흥읍 하산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 백산재에 가보자.

2009년 3월 20일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72호로 지정되었다.

 

장흥 백산재는 문중재실이었다가 장흥위씨 문중의 사우인 하산사의 강당으로 함께 활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원래는 조선후기 장흥부의 관아건물을 2차 이건을 통해 193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당시 이건 과정에서는 거의 원형 그대로 옮겻다고 전하고 있다. 

백산재는 건축 부재나 결구수법 등으로 보아 조선후기인 19세기경의 건물로 보인다. 

 

외주사 오른쪽에는 충렬공 신도비가 있다. 

2018년 32세 황량(청계공 11대손)의 헌성으로 도문회에서 세웠다. 귀부용관의 8척 오석으로 시공하였고 고려대학교 17대 총장 이기수 박사가 찬하였다.

 

회주사 가운데에는 회주군 사적비가 있다.

1987년 종인들이 성금을 모아 5대사업을 추진하면서 근수하였다. 시조공의 사적과 상계조상의 행적 및 분파의 대개를 기록하였다. 귀부용관의 9척 오석으로 시공하였다. 2010년 문중의 결의로 보의론연구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연구 결과에 의하여 이가원 찬의 원물을 보정 국역하여 2012년 개서하였다. 

 

회주사 입구의 첫 문을 경지문이라 한다. 백산재 정면 목조 와가 3칸 건물로 신실의 외삼문이다.

공경하고 삼가라는 뜻을 담아 경지문이라 하였다.

 

백산재는 회주사의 강당이다. 원래에는 18세 승문원습독공 유형이 거처했던 산정재가 있었고 이후 다산재로 개칭하였으며 오랜 세월에 너무 낡아 지탱하기 어려웠다. 1936년 32세 원량(운암공 11대손)이 장흥부의 관아건물 목조 와가 6칸 건물을 매입 이건하고 백산재라 하였다. 이 건물은 보존 가치가 높다는 학계의 전문가 고증에 따라 2009년 3월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272호로 지정되었다. 

 

백산재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된 본 건물은 비록 이축과정에서 다소 변형된 구조 기법을 보이기는 하나 넓은 대청과 온돌방 등 조선후기 관아건물 구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들보 등 사용부재도 매우 장대하고 건실하며 기둥은 모두 원형기둥을 사용하였다. 백산재는 조선시대의 행정관아의 건물이 거의 없는 터에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관아 건물 연구자료에 도움이 되고 장흥부 고나아의 복원 측면, 공공기관 건물이 장소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용도가 변화되는 점을 알 수 있는 측면 등에서 건축 및 역사적 가치가 있다.

 

관수정은 백산재 앞 담장 밖에 세워진 정각이다. 호수를 굽어보며 음풍농월을 즐길 수 있어 관수정이라 이름하였다. 1991년 32세 종량(운암공 11대손)이 세웠으며 풍우에 노후되어 2020년 보수하였다.

 

모선문이다. 신실 정면에 위치한 목조 와가 3칸 건물로 내삼문이다. 승조모선의 뜻을 담아 모선문이라 이름하였다.

 

이곳의 전체를 장흥위씨 회주사라고 한다. 

상계의 주요사적을 보면 시조공의 휘는 경이다. 서기 638년 신라 선덕여왕이 당 태종에게 도예지사를 요청함에 8학사가 파견되었다. 공께서는 소임을 마친 뒤 신라에 남아 벼슬이 아찬에 이르렀고 고려 충선왕 때 회주군에 추봉되었다.

회주는 장흥의 고호로 장흥위씨의 관향이 되었다. 이후 298년가 실계되었고 고려 초 시중 창주를 중시조로 기1세하여 세계를 이었다. 5세 계정(1038~1107)은 고려 문종조에 문과 급제하여 내리 여섯 임금을 섬기면서 문하시중, 삼중대광, 태사, 태보 등을 역임하였다 졸후 인종으로부터 충렬시호를 받았으며 예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이후 원개, 문개 형제가 장원급제하니 지역의 경사로 반기며 뒷산을 장원봉이라 명명했다는 유래비가 있다. 원개는 불가의 귀의하여 송광사의 6대 사주가 되었고 입적 후 원감국사 시호와 보명탑호를 받았다. 국사께서는 시문에 밝아 동문선에 최치원선생 다음으로 많은 시문이 실려 있다. 문개는 한림학사 등을 역임했다. 14세 합문판사공 충은 고려말에 충절을 지키다 장맥원류되었다. 15세 통선랑공 덕룡은 누대의세거지 장원봉 아래 터를 관가에 물려주고 이곳 평화로 이거 정착하였으며 아들 4형제를 두어 분파가 시작된다. 첫째 자온은 능주파, 둘째 자량은 장흥파, 셋째 자공은 사월파의 파조가 되었고 넷째 자검은 무후다.

 

회주사는 시조공과 상계 현조를 배향한 문사우이다. 1925년 제암산 아래 충렬공 제실 하산재 동편에 설단하여 시조공과 합문판사공을 향사하였다. 1975년 문중의 결의로 이곳 백산재 후원에 신실을 지어 하산사라 사호하고 시조공, 충렬공, 합문판사공을 배향하였다. 소요경비를 32세 황량(청계공11대손)이 헌성하였다. 1992년에 중조공과 15세 통선랑공을 추배하여 5현조를 향사하였고 2016년 하산사를 회주사로 개호하였으며 2018년 정승공 소와 한림학사공 문개를 추배하였 7현조를 배향하고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향사한다.

 

 

회주사는 장흥위씨 7현을 향사하는 곳이고, 백산재는 회주사 안에 있는 강당이다. 

회주사는 원래 관아건물이었는데 32세 원량(운암공 11대손)이 장흥부의 관아건물을 매입한 것이다.

장흥은 고려시대부터 장흥 위씨의 관향인 것이다.

회주는 장흥의 옛 이름이다. 

 

 

주소 : 전남 장흥군 장흥읍 외평길 168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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