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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경남 거제시 가볼만한 곳 : 유섬이 묘

by 리차드박(Richard Park) 2025.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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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 거제면에는 유섬이 묘(유처자 묘)가 있다

1801년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극심해지면서 순교한 유항검(46, 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식솔들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다.

유항검과 함께 순교한 그의 동생 관검과 제수 이육희, 그이 부인 신희, 장남 중철과 맏며느리 이순이, 차남 문석, 조카 중성 등으로 이들 모두 2014년 시복됐다.

순교자들이 처형된 뒤 교우들이 유항검의 고향인 전북 완주군 초남리와 가까운 바우배기에 임시로 매장해 놓았던 것을 1914년 4월 19일 전주 전동성당 보두네 신부와 신자들이 동생관검을 제외한 유항검 등 7명의 순교자들을 합장해 전북 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 길 89 치명자산성지로 옮겨 왔다. 치명자산성지는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됐다.

 

 

우항검의 자식 가운데 열다섯 살이 안 된 아들과 딸들이 유배를 갔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유항검의 자식 중에 '유섬이'란 딸이 거제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성래 박사(전 수원교회사연구소 고문)가 거제도호부사를 지낸 하겸락(1825 ~ 1904)의 문집 '사헌유집'의 해제를 집필하던 중 우연히 '유섬이'에 관한 기록을 찾게 된다. 묘 옆 바위에 [칠십일세유처녀지묘] 라고 묘비를 새겼다는 '사헌유집'의 기록을 근거로 2014년 유섬이의 묘를 어렵게 찾아낸다. 유섬이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아홉 살이었던 유항검의 딸로 거제도호부 관비로 유배를 왔다.

유섬이가 세상을 따나자 하겸락 부사가 장례비용을 치르고 제문을 지어 바치고 묘비를 세워주었다.

 

 

 

 

신유박해때 유섬이 가족은 순교를 당하거나 유배를 당했다.

아버지 유항검, 어머니 신희, 오빠 유중철, 올캐, 이순이, 오빠 유문석 등 5명이 순교를 당하고 

본인 유섬이 9살, 동생 유일석 6살, 동생 유일문 3살, 등 3명은 어린나이에 각기 따로 유배를 갔다.

 

 

유섬이는 1801년 아버지 유항검이 순교 후 9살때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읍으로 유배되어 한 노인의 수양딸로 들어갔고 바느질로 먹고 살았다.

14살때 중매자가 중매를 섰는데 "시집가라하면 반드시 죽음으로 갚으리라", 흙과 돌로 집을 굳게 지어 바느질에만 편하게 해 주소서" 하면서 40살이 되어 예사사람처럼 살면서 항상 몸에 칼을 지니고 살았다고 한다.

고을 사람들이 감히 더럽힐 마음을 갖지 못하고 그를 유처녀라고 불렀다.

 

 

 

하겸락 부사의 사헌유집에는 

1863년 7월 형리가 "유처녀가 71세로 죽었습니다" 하니 "슬프다, 천지만물이 음양의 짝이 있지않음이 없거늘, 유처녀는 몸을 정결히 하며 71세를 살았으니 곧고 깨끗한 정절이 구천에 사무친다, 묘 옆 바위에 [침십일세 유처녀지묘] 라 아홉자를 세겨두어라"고 하였다.

 

 

유섬이는 1801년 10월 거제도에 도착해 당시 거제부사(이영철)의 배려로 거제면 내간리 한 할머니의 수양딸로 보내졌다. 그녀는 거제에 머물면서 동정녀로서 삶을 살아가야할 종교적 신념으로 마을 사람들의 중매도 거절했다. 그녀는 평생 혼자 살면서 거제에서 처음으로 회양적(산적)을 만들어 마을사람과 나눠 먹는 등 함께 어울려 지내다 1863년 7월 일흔 한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이곳은 천주교인들의 순례지이다. 

마태복음 : 16장 24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더 많은 동영상을 원하시면 유튜브 검색 "리차드박"
https://www.youtube.com/channel/UCIri0qOtRDddIxmp9Nx8xLA

 

주소 :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산53-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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